"액자값만 받습니다" 내지는 "공자로 드립니다"라는 공고문구가 부쩍
눈에 띈다.

광고뿐만 아니라 아파트 입구에 그림을 걸어놓고 파는 용달차 아저씨도
그렇게 써붙이고 장사를 한다.

그 유명한 물방울 그림도, 누구누구의 산수화도 액자값만 받고 거저
준다니 조금이라도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광고 카피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통칭되는 이 그림들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그럴듯하게 복제하는 복제화 내지는 이국적 정서에
한국적 모티브들이 가미된 풍경화 등의 일색이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인가 그런 그림들이 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현란한 보색들의 대비와 흰색의 가감에 의한 색조의
변화들을 이용한 치졸해보이는 작품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추상화, 판화, 정물, 수묵 채색화, 옛 국적 풍의 풍경화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장르의 그림들이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가장 인기가 좋은 인상주의 그림류는 어엿한 백화점의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양한 기법으로 그럴듯하게 그려낸 (사실 그중에는 꽤 훌륭한
작품도 있다.)

작품들과 정식화랑에서 전시를 통해 유통되는 다른 작품들과의 구별과
평가는 가능한가?

실제로 작가들 중에는 일부러 키치적인 요소들을 차용한 작품을
함으로써 대중들의 키치적인 취향, 고고한척 하는 고급키치들을 조롱하는
부류도 있다.

1년 동안 제작, 생산되는 키치그림들은 수십만점에 달하고 또 그중
대부분이 수출까지 된다.

실제로 대구에서 13년째 미술품수출업을 해온 모회사는 지난 한해
15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고하고 신문에서는 이런 기업을 앞서가는
중소기업이라고 소개한다.

외화 획득에까지 한몫하는 이런 그림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른다"고 우선 이런 그림들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성장과 교육수준의 향상은 많은 중산층들을
만들어냈고 이들은 나름대로 형성된 자신들의 신분과시용으로 혹은 예술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보다 저렴하면서도 미적허영을 충족시켜줄만한
그림들을 찾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호당 5,000원에서 비싸도 10,000원을 넘지 않는
(남영동과 삼각지의 경우 왠만한 가정의 거실 한 벽면을 채울 수 있는
60호 정도의 작품이 20만원~40만원 정도, 동양화의 경우는 10만원~30만원
정도) 그림의 가격은 정말 매력적일 것이다.

게다가 예술가들의 힘든 실험을 거쳐 검증된 결과들을 아무런 고통없이
쉽게 받아들여 패턴화하고, 그림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얄팍한
눈가림용의 행복감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따라서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분위기의 키치작품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든다.

< 가나미술문화연구소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