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때는 공장문을 닫아서 3년만에 명절을 시골집에서 보내게
됐지만 왠지 불안해요"

현대전자 이천공장 반도체 생산1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경희씨의 심정이다.

공휴일도 일요일도 없이 24시간 내내 돌아가던 삼성 현대 LG등 국내
반도체 3사공장이 오는 추석연휴에 생산라인을 올 스톱한다.

공장은 명절때만이 아니라 일요일 휴무도 실시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금맥"으로 불리던 반도체가 올들어서는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애물단지"로까지 몰리게된 이유는 바로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때문이다.

작년말 개당 50달러씩 하던 16메가D램은 8월말 현재 12~14달러로
폭락했다.

저급제품의 경우 10달러선 마저 위협받고 있다.

값이 떨어지면서 재고도 일부공장의 경우 작년보다 50% 이상 늘어나고
있다.

"80년대 중반 일본이 64KD램을 덤핑으로 치고 나온 이래 10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반도체 산업협회 김치락부회장)는 얘기다.

위기는 각 업체의 상반기 실적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의 순익은 4천5백34억원.

작년 상반기(1조3천3백13억원)보다 3분의 1로 쫄아들었다.

반도체만 보면 3천억원의 이익을 남겨 지난해(1조원 추정)보다 70%나
급감했다.

사정은 현대나 LG도 마찬가지다.

현대전자는 반도체에서 1천7백60억원으로 55%, LG반도체는 1천7백억원으로
60%씩 줄어들었다.

작년보다 절반 이상씩 줄어든 이 수치가 그러나 "진짜 경기"의 바로미터는
아니다.

숫자 이면에 가려져 있는 내막을 들여다보면 1.4분기에 낸 이익이 적립돼
그나마 상반기 흑자를 낸것임을 알수있다.

2.4분기엔 적자를 내면서 "오히려 1.4분기에 번 돈을 까먹었다"(현대전자
C부장)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불황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다.

이같은 불황극복을 위해 국내업계는 비메모리 쪽으로 구조재편을
서두르면서 대대적인 감량 경영에 나서고 있다.

각사는 이미 20~30%의 경비 삭감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각종 협찬이나 이벤트성 광고도 중단했다.

그래서 "반도체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던 이벤트업체중엔 이미
문닫은 곳도 있다"(LG전자 K부장)는 소리도 들린다.

반도체 불황은 그렇게 흥청거리던 공장주변의 상가나 식당도 썰렁하게
만들었다.

현대전자 이천공장 주변의 식당 노래방 당구장 등의 수입은 작년
이맘때의 30~50% 정도로 급감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주변 갈비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이런 대증적 요법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공급과잉이라는 대세를 꺾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기업들의 수율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하루
이틀 공장을 돌리지 않는다 해도 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
(삼성전자 L이사)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도체 값이 더 떨어지지 않고 연말까지 이 수준에서 버텨주기만
해도 다행"(김부회장)이다.

미국의 메릴린치사가 올연말부터는 다시 수요초과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지만 내년부터 대만업계가 반도체를
본격 생산하면 불황국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