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용과 성실로 일관한 개성상인 출신 이회림 회장이 설립한 동양화학은
36년동안 한우물을 파온 기업답게 보수적이면서도 나름대로의 포용력을
갖추고 있다.

보수안정속에서 변화를 구하는 이회사의 문화는 노사관계에 여과없이
투영돼오고 있다.

지난 68년 설립된 이회사 노조는 29년동안 사내 노사문제를 가지고
외부의 도움을 의탁해 본적이 없다.

각종 현안들이 쉴새없이 생겨났지만 노사간 대화채널을 통해 무리없는
타결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노사간 협상전략 차원에서 취해지는 쟁의발생신고도 이회사의
노조이력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회사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노도처럼 일어났던 지난 89년, 동양화학도 다른회사들 처럼
노사갈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특히 노조는 무리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개선등을 요구하며 회사측을
곤경에 몰아부쳤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들을 적대시하거나 처벌하기보다 설득을 통해 조직의
일원으로 수용하는 길을 택했다.

그결과 동양화학에는 협력과 화합을 통한 생산적 노사관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런 협력정신은 지금까지 동양화학의 노사관계에 근간을 이루게
되었으며 최근 실시된 명예퇴직제 시행과정에서도 발휘됐다.

생산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데 비해 인건비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 부담이 된게 시행 배경이었다.

제도시행이 발표되자 한솥밥을 먹던 동료를 내보내야 하는 노조
입장으로서는 반대하는 목청을 높이지 않을수 없었다.

회사측은 서둘러 매출액 대비 인건비부담 내역등을 담은 자료를 노조에
제시하고 불가피한 선택임을 간곡히 설득했다.

한동안 고민하던 노조는 마침내 회사의 인원감축에 동의하는 결단을
내렸다.

피할수 없는 대세하면 수용하되 희생을 최소화하는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정착된 노사간 신뢰분위기로 인해 동양화학의 명예퇴직제 실시는 후유증
없이 마무리 되고 꾸준한 설비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도약을 기약하게 됐다.

박병만 노조위원장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명예퇴직제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생산성 등을 포함한 총괄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동양화학은 노사간 협력의 기본토대인 노사협의, 복리후생, 안전관리 등
모든 부문이 질적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난 89년 보수적인 기업답지 않게 타회사보다 먼저 근로자 퇴직연령을
55세에서 58세로 연장한게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도 사원아파트를 제공하는가 하면 주택자금융자 자녀장학금지급
등 각종 복리후생제도를 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동양화학은 또 지난해 부터 노사협조 해외연수제를 부활, 장기근속사원에
대한 포상성격으로 해외연수를 내보내고 있어 노조원들로 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튼튼한 기반위에 조성된 이회사의 노사협조 정신은 임금협상에도
이어진다.

타회사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수준에서 임금협상이 타결되면서도
경영정보의 공개속에 4-5차례 정도의 협의로 임금협상을 마무리 짓고
있다.

올해는 명예퇴직제 실시의 와중에서도 5차협의로 타결짓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회사의 권석명 사장은 "첨단 정밀화학기술개발과 글로벌경영을
지향하는 동양화학의 힘의 원천은 노사간 신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동양화학은 지난해 12월 인천공장에서 전 임직원이 모인 가운데
노사화합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잘뿌리내린 노사협조 무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또다른 다짐인
셈이다.

< 인천 = 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