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성공했다] 이준욱 <대양합동 사장> .. 신뢰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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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학습보조기구인 엠씨스퀘어로
잘 알려진 대양합동(대표 이준욱).
이 회사가 걸어온 길은 화려한 성공이라기 보다는 중소기업의 집념어린
소비자 보호정책의 결과라고 할수 있다.
하루에 몇분씩 사용하면 뇌파를 학습에 효과적인 흐름으로 바꿔주는데
도움을 주는 엠씨스퀘어는 최근에는 유사품까지 범람할 정도로 수험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90년말 처음 선보인 이제품은 지난해 돌풍을 일으키면서 8만대가 팔려
나갔고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12만대가 판매돼 매출 4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하반기부터는 해외상표등록을 마치고 캐나다 일본 홍콩등 5개국에 수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이준욱 사장과 부인인 임영현 기획이사는 이를 성공이라기
보다는 중소기업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드디어 자립기반을 마련한 단계
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돌이켜보면 다시 시작하라면 못할것 같은 힘겨운 시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사장은 원래 피혁 가공무역업을 했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라텍스로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한 돈피를 개발하는 등
피혁사업을 알차게 키웠었다.
미국의 엠씨스퀘어를 알게된 것은 피혁 바이어와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해 피혁사업을 정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OEM으로 수출하다가 90년말 내수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학습보조 효과에대한 의구심과 이상한 제품이라는 편견을 깨기가 힘들었다.
국내 학계에는 이론적으로 효과가 증명되지않아 서울대학교에 실험을 의뢰
했으나 제품 자체가 황당하다는 이유로 연구 프로젝트 맡기를 거절당하기도
했다.
끈질긴 설득끝에 연구에 착수하고 효과있다는 객관적인 실험결과 데이터를
얻어내고도 이번엔 관계당국에서 인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단계가 쉽게 넘어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판매는 판매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한달 매출을 300만원도 올리기 힘들었다.
피라미드 유통업체에서 판매를 넘기면 한달에 몇억원어치씩 팔겠다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그렇게해서 많이 판매하면 제품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나올 것이 당연하다는 판단 아래 자사 전문대리점 판매방식을
고수했다.
소비자가 실험 사용해서 효과가 없으면 판매하지 않고 또 그래도 구매후
불만이 제기되면 무조건 환불해주는 등 소비자보호 장치를 철저하게
운영했다.
때문에 돈피 무역업에서 번 사업자금을 거의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하기를 3년,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드디어 지난해초부터 판매가 일어나기 시작,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자금이 바닥이 난 시점에서 천신만고끝에 불길이 살아난 것이다.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93년부터는 장학생을 선발, 지금까지 총374명
에게 학비를 보조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교실을 구성해 자녀의 학습 문제에 대한 강연회도
개최하는 등 청소년 문제관련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성적이 올라간 학부모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임이사는 경동시장에서 조기장사를 하는 학부모가 성적을 올려주어
고맙다고 조기를 선물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업이 도약기에 들어선 지금 이사장과 임이사는 앞으로도 사업 확대보다는
청소년들의 장학사업에 더 신경을 쓸 생각이라고 밝힌다.
또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주변의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 고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7일자).
잘 알려진 대양합동(대표 이준욱).
이 회사가 걸어온 길은 화려한 성공이라기 보다는 중소기업의 집념어린
소비자 보호정책의 결과라고 할수 있다.
하루에 몇분씩 사용하면 뇌파를 학습에 효과적인 흐름으로 바꿔주는데
도움을 주는 엠씨스퀘어는 최근에는 유사품까지 범람할 정도로 수험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90년말 처음 선보인 이제품은 지난해 돌풍을 일으키면서 8만대가 팔려
나갔고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12만대가 판매돼 매출 4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하반기부터는 해외상표등록을 마치고 캐나다 일본 홍콩등 5개국에 수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이준욱 사장과 부인인 임영현 기획이사는 이를 성공이라기
보다는 중소기업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드디어 자립기반을 마련한 단계
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돌이켜보면 다시 시작하라면 못할것 같은 힘겨운 시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사장은 원래 피혁 가공무역업을 했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라텍스로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한 돈피를 개발하는 등
피혁사업을 알차게 키웠었다.
미국의 엠씨스퀘어를 알게된 것은 피혁 바이어와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해 피혁사업을 정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OEM으로 수출하다가 90년말 내수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학습보조 효과에대한 의구심과 이상한 제품이라는 편견을 깨기가 힘들었다.
국내 학계에는 이론적으로 효과가 증명되지않아 서울대학교에 실험을 의뢰
했으나 제품 자체가 황당하다는 이유로 연구 프로젝트 맡기를 거절당하기도
했다.
끈질긴 설득끝에 연구에 착수하고 효과있다는 객관적인 실험결과 데이터를
얻어내고도 이번엔 관계당국에서 인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단계가 쉽게 넘어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판매는 판매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한달 매출을 300만원도 올리기 힘들었다.
피라미드 유통업체에서 판매를 넘기면 한달에 몇억원어치씩 팔겠다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그렇게해서 많이 판매하면 제품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나올 것이 당연하다는 판단 아래 자사 전문대리점 판매방식을
고수했다.
소비자가 실험 사용해서 효과가 없으면 판매하지 않고 또 그래도 구매후
불만이 제기되면 무조건 환불해주는 등 소비자보호 장치를 철저하게
운영했다.
때문에 돈피 무역업에서 번 사업자금을 거의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하기를 3년,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드디어 지난해초부터 판매가 일어나기 시작,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자금이 바닥이 난 시점에서 천신만고끝에 불길이 살아난 것이다.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93년부터는 장학생을 선발, 지금까지 총374명
에게 학비를 보조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교실을 구성해 자녀의 학습 문제에 대한 강연회도
개최하는 등 청소년 문제관련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성적이 올라간 학부모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임이사는 경동시장에서 조기장사를 하는 학부모가 성적을 올려주어
고맙다고 조기를 선물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업이 도약기에 들어선 지금 이사장과 임이사는 앞으로도 사업 확대보다는
청소년들의 장학사업에 더 신경을 쓸 생각이라고 밝힌다.
또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주변의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 고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