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추세가 이달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던 110엔선이 허물어지더니 111엔의
벽마저 붕괴됐다.

엔화가 1년여전인 작년 4월에 79엔대까지 폭등, 전세계를 슈퍼엔고물결로
뒤덮은 것과 비교하면 요즈음 달러당 110엔대는 엔저가 국제외환시장의
새로운 대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년여간 엔화의 하락폭은 37.5%에 이르렀다.

1년사이에 엔화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엔화흐름이 급변하자 앞으로 엔화가 어떤 궤적을 그릴지가
국제외환관계자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국제외환전문가들은 일단 지금의 엔저추세가 당분간 지속된후 연말께에는
수그러들 것으로 보고있다.

지금의 달러당 110엔대의 엔저가 좀더 유지된후 올 연말쯤엔 엔화가
100엔대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동향 <>미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
<>미국기업들의 엔저(달러고)경계감 <>일본경상흑자추이등을 근거로
이같은 전망을 내리고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양국의 금리정책이다.

미국은 인플레우려로 조만간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늦어도 다음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열리는 8월20일쯤에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아직 경기회복을 자신할수 없는 탓에 당분간
금리를 현수준에 묶어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될 8월께 달러가 오르면서 엔화는
좀더 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도 경기회복세가 확실해질 연말쯤에는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돼 엔화가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경제성장률은 엔저를 좀더 몰고 갈 요인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 1.4분기에 미국은 전분기대비 2.2%, 일본은 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4분기에는 미국의 성장률이 4~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일본의 경우 1.4분기보다는 다소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발표될 양국의 2.4분기 경제성장률은 엔하락.달러상승의
현구도를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미국업계의 달러고에 대한 반발은 더이상의 엔저를 가로막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초 달러가 105엔을 넘어 109엔선에 이르렀을때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미 기업들은 클린턴행정부에 달러고정책을 시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때 클린턴행정부는 "강한 달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업계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게 외환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엔저의 강력한 저지선으로 여겼던 110엔이 무너짐으로써 업계의 엔저
저지요구를 더이상 무시할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달러가 111엔으로 치솟았을때 미자동차업계 대표단은 클린턴대통령을
방문, 재차 달러고정책의 중지를 촉구했다.

이에대해 클린턴대통령은 예의 "강한 달러"예찬론을 펼치지 않고 업계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이는 미정부도 110엔이상의 엔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동안 엔저요인으로 작용해온 일본의 경상흑자추이도 앞으로는 엔화
상승요인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주초 발표된 5월경상흑자는 32억6,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46%나 감소했다.

이로써 경상흑자는 9개월연속 감소, 엔화가치를 111.16까지 떨어뜨렸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일본의 경상흑자감소추세가 진정돼 엔저에 제동이
걸릴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엔저의 효과가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나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 경상흑자감소폭이 둔화되고 그 결과 엔화가 상승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밖에 반도체와 보험시장개방협상등 현재 진행중인 미일간의 무역협상이
끝까지 미국의도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기위해
작년처럼 강력한 엔고(달러저)정책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또하나 엔화의 추가적인 하락을 저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은 대다수
일본수출기업들이 105엔안팎을 손익분기점으로 잡고 있는 점이다.

이는 엔화가 일단 상승기조로 돌아서게 되면 이 수준까지는 별 저항없이
올라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외환전문가들은 대체로 달러당 105엔선을 미일양국에 큰 짐이 되지
않으면서 세계경제의 고른 성장을 유도할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점들을 종합해 볼때 엔화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2.4분기
미일경제성장률 격차로 인해 오는 8월께 115엔정도까지 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후부터는 일본무역흑자의 감소폭이 둔화되고 미국업계의 달러고반대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등 엔화상승요인이 강해져 연말쯤에는 105엔근처로
올라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결국 110엔대의 "강한 엔저"상황이 좀더 유지된후 연말을 전후해
100엔대의 "약한 엔저"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