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세대에는 여성이 임상의사로 교수직에 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졌지요. 하지만 금기란 깨기 위해 있는것 아닙니까. 앞으로 많은 여성
후배들이 "금녀구역"으로 여겨져온 분야에 진출했으면 합니다"

박귀원 서울대의대교수(48.소아외과전문의)는 환자진료를 담당하는 임상
의사로서 대학강단에 선 최초의 여성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언니 셋이 모두 의사였기에 그의 의대진학은 매우
자연스런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서울대의대교수직을 퇴임하고 을지병원외과과장직을 맡고 있는
박길수씨.

하지만 본과 지원부터는 문제가 그리 쉽지 않았다.

교내에서 외과를 지원한 첫 여학생이었던 것.

"부모님은 산부인과나 내과를 추천하셨지만 저는 수술을 통해 금방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수 있는 외과를 마음에 두었어요. 아버님은 "한국사람중
여자에게 수술받으러 올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막으셨죠"

아버지가 허락하신 뒤에도 "한사람을 위해 당직실을 따로 만들수는 없지
않느냐. 굳이 원한다면 여자대학을 추천해 주겠다"고 하는 외과담당의국장을
설득하느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77년 전문의자격을 딴 그는 아버지에게 "여자에게도 수술받으러 많이
오던데요"라고 얘기할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의대에는 지금도 레지던트과정에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의국이
많아요. 마취과는 79년, 흉부외과에는 올해야 처음 여성이 들어갔죠.
신경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에는 아직도 여성이 없어요"

재작년 신경외과에서는 교수는 수락했으나 선배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여성이 들어가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진로 때문에 찾아오는 여학생들에게 떨어지더라도 일단 의사는 표명하라고
권합니다. 처음 길을 뚫기는 어렵지만 과정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좋은 평을
얻고 있어요"

그는 80년 전임강사로 시작해 92년부터 정교수로 재직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미혼이지만 학생과 어린이환자들이 늘 함께해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고.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