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가 좋지 않다.

경상수지 적자만 해도 올들어 5월말까지 80억달러를 넘었다.

올초에 잡았던 연간 적자억제 목표액을 다섯달만에 꽉 채워버릴 정도로
수출이 부진한 것이다.

이에따라 한국 경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예 앞이 안보인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국 경제에 이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소는 여러가지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들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엔저 등으로 수출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국제가격이 폭락하는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쟁력이 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산업이 이런 악재를 견뎌낼 만한 자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선진업체와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기반기술과 고급
연구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약골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한게 현실이다.

한국경제신문사와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유화 수출산업의
현황과 과제를 긴급 진단해 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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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대 울산 유화단지의 건설로 석유화학 산업을 시작한 한국은
90년대 초반의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에틸렌 생산 능력이 세계 전체 생산
규모의 4.9%(95년 기준)인 357만t에 달해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95년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4.6%를 점하는 56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전체적으로도 3대 수출 품목이 됐다.

국내 업계는 그동안 선진국으로부터 공정 기술을 도입해 범용 제품 생산
위주의 양적인 성장에 치중해 왔다.

그 결과 범용 제품의 생산 기술이나 품질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신제품 개발기술 <>설계 기술 <>촉매기술 <>중합반응및 공정개발
<>고분자 재질 가공기술 등 핵심기술은 선진국의 40~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로열티 지급부담과 감가상각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주요 경쟁 상대국인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다.

국가별 에틸렌 제조 원가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에탄을 사용하는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지만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서구 일본 중국보다는 제조원가가 동일하거나 싸다.

국산 유화 제품이 선진국 제품에 대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요인은
여러가지다.

우선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대규모 신/증설 투자를 꼽을 수 있다.

이 투자로 인해 3년여동안 과잉 공급의 몸살을 앓기도 하였으나 최신
공정의 도입으로 높은 생산 효율및 고품질 생산 기반을 확충하게 됐다.

또 선진국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나프타 분해 공장이 에틸렌 기준 연산
30만~40만t, 계열 제품공장이 10만~20만t의 단위 규모를 갖춤으로써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같은 경쟁우위 구조가 품질이나 기술에 의한 차별화보다는 범용
제품의 생산과 가격 경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가격 경쟁에 의한 우위 확보는 향후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국내외 환경변화를 감안하면 고기술
및 고기능화에 의한 차별화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현재와 같은 가격 경쟁
위주만으로는 수출 확대에 한계가 있는게 분명하다.

지금까지가 양적 성장에 의한 제1의 도약기였다면 이제는 질적인 고도화를
통한 제2도약이 필요한 분기점이라 할수 있다.

앞으로 주력시장인 동남아및 중국과 세계 시장 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수입대체를 목적으로 자체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은
상당히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기타 개도국과 산유국들이 수입 대체와 수출 차원에서 설비
신/증설을 추진하고 있어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선진 유화 업체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매수/합병을 통한 기업의
대형화와 집약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고 공정개선및 신제품 개발 등에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추진하면서 기술 우위와 기술 개발의 독점적 이익
을 향유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하에서 국내 업체들은 추가 생산분에 대한 판매망 확보
경쟁및 세계 시장에서의 치열한 가격 경쟁이 불가피하고, 선진 기술의 도입
이나 제품 고기능화와 차별화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범용 제품에서 단순한 생산 기술과 가격 경쟁에 의존
해서는 석유화학 제품이 계속 수출 주력품목으로 자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먼저 가격 경쟁력의 유지 내지는 강화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물류 시스템을 구축, 높은 수준의 물류 비용 부담을 완화시켜야 한다.

또 선진국이나 경쟁국처럼 나프타 등 산업의 기초 원료유에 대한 관세율
3%(할당관세)를 무세화 또는 저세율화할 필요성도 있다.

2000년에 6.9%로까지 연차적으로 인상시키려는 환경부의 폐기물 처리
부담금(판매액의 0.7%) 인상 방안도 재고되어야 한다.

국내 업체들간의 무분별한 설비 투자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

그러나 주력 수출 시장의 시장 환경 등을 감안한 투자를 확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이때 국내 업체간에도 선진국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사업 통/폐합 또는
상호 교환 등 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통한 규모의 경제화및 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