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US오픈은 근래보기 드물게 아주 긴장감 넘치는 대회었던
것같다.

마지막 라운드 최종을 스티브존스의 마지막 퍼팅이 홀인 되고 나서야
우승자가 결정될 정도로 우승의 향방이 오리무중이었으니 현장에서 이를
지켜 보는 갤러리들은 아마도 골프의 진수를 유감없이 맛보았으리라.

그런데 US오픈이 끝난뒤 골퍼들이 데이비스러브3세가 18번홀에서
스리퍼덩을 하여 우승을 놓친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통하여 경기를 지켜 본 필자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데이비스러브3세가 15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3언더로 동률선두를
이뤘을 때만해도 필자는 그가 3언더만을 유지하면 우승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클랜드힐스의 나머지 3번홀은 오거스타의 아번코너에
비교될 만큼 난이도가 높은 홀들인데, 그곳에서 전날 언더파를 친선수는
데이비스러브3세가 유일하였기 때문이었다.

16번홀에 이르러 데이비스러브3세는 드라이버가 아닌 아이언을 뽑아
티샷을 하였는데도 그의 볼은 연못 바로 앞의 깊은 러프에 박혔다.

예견했던 대로 세컨드샷을 한 볼은 그린에 떨어지긴 하였지만 런이
많아 핀을 지나 그린에지에 멈추었다.

진흙에서의 버디 값을 치르는 것 같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다행히도 파세이브를 하여 필자는 그의 우승이 굳어지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파3인 17번홀에서 데이비스러브3세가 티샷한 볼은 홀에서
멀리 떨어져 오른쪽 에지에 걸렸다.

그의 볼이 홀인되기 위해서는 높은 둔덕을 지나 내리막 경사를 타야했고
만일 볼이 홀컵에 못미치는 경우 또다시 내리막 퍼팅을 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보다 앞서 우승문턱을 기웃거리던 퓨릭이라는 선수가 비슷한
지점에서 로브웨지로 볼을 띄워 붙이고자 하였으나 내리막 퍼팅을
하게 되어 무너졌다.

그래서 필자는 데이비스의 샷에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데이비스는 퓨릭과 마찬가지로 로브웨지를 뽑아 들고
커다란 스윙연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순간 데이비스러브3세의 우승은 물건너 갔다고 판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볼은 홀컵 약 1.5m 지점에 떨어졌으나
오클랜드힐스의 그린은 데이비스의 의도대로 홀컵주위에서 그의 볼이
멈추는 것을 허용 하지 않았다.

결국 퓨릭과 너무나도 비슷하게 그는 보기를 범했다.

18번홀에서도 버디를 노리던 그의 퍼팅은 거의 모든 아마추어들이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3퍼팅"버기"로 끝나고 말았다.

필자는 데이비스러브3세가 17번홀에서 로브웨지샷을 한 것이 아니라
퍼터나 아니면 7번아이언 등으로 볼을 굴렸어야 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데이비스가 로브웨지로 볼의 낙하지점은 맞출 수 있을지
모르나 떨어진 볼이 얼마나 굴러갈 것인지는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키장설계자가 미끄러져 지나가라고 만들어 놓은 급경사지역에서
갓 스키를 배우는 스키어들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균형을 잃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내리막 라이에서
볼을 띄워서 떨어진 자리에 멈추게 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어느 행자 스님이 필자에게 말했었다.

"법은 귀 한다"고.

그래서 골프도 지형에 순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