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자치시대가 열린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행정
서비스의 개선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표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자치단체장들이 민선시대를
주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행정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고객만족"이라는 민간기업의 경영이론이 민선자치시대를 맞아 "행정이야
말로 최대의 서비스산업"이라는 명제로 자치단체사이에 급속히 자리잡은
것이다.
서울 묵동에 사는 이병희씨(38)는 가게내에 담배소매를 하기 위해 최근
구청에 관련서류를 냈다.
이전같으면 담배인삼공사까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나 구청을 한번
방문한 것만으로 10일만에 담배소매점 지정을 받았다.
모두 "민원후견인제" 덕분.
주민의 민원사항을 전문공무원이 전담, 불편없이 일사천리로 민원을 해결
해주는 제도다.
서울시가 올 상반기 용산 양천 성북 성동 중랑등 5개구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오는 7월부터는 전 자치구로 확대될 예정
이기도 하다.
인천 동구는 지난해 7월부터 직원들의 사무착오로 민원인이 두번씩 발걸음
을 해야할 경우 왕복차비로 2천원을 주고 있다.
액수야 적지만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마저 보상하겠다는 취지다.
이같은 "행정착오보상제"는 현재 전국 8개 시.군에서 시행하고 있다.
자치단체에 따라 돈대신 3천원짜리 전화카드나 5천원에서 1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지급하기도 한다.
"민원실명제" "행정착오보상제" "현장민원처리제" "주민감사청구제"등
민선 1년동안 경쟁적으로 벌어진 이같은 행정서비스제도는 이젠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민선시대를 주민들이 직접 느낄수 있도록 이같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행정서비스가 개선된 제도는 서울 자치구에만서도 현재 30여건이 넘는다.
그만큼 그동안 관청의 민원처리가 권위주의적이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하지만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주민만족경영에 나섰다는 얘기다.
이처럼 주민을 위한 행정서비스의 확산은 민선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는
특징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민원담당공무원들의 태도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에 비해서는 고객만족도가 아직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선시대에는 볼수 없었던 풍경이 아닐수 없다.
민원서류만 발급하던 딱딱한 분위기에서 주민이 마음 편하게 드나드는
종합정보서비스센타로 바뀌고 있는 동사무소가 대표적인 예다.
법령집을 민원실에 배치하고 복사기및 회의실을 주민들이 마음대로 이용
하도록 개방하기도 한다.
전세입자를 위한 주택임대차 계약서 확정일자 신고대행이나 장애인 노약자
에 대한 민원서류 배달도 호응을 얻고 있는 서비스다.
주민을 위한 영어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는 서영관 동작구 상도4동장은
"민선시대가 된 이후 주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사항을 처리하는 동사무소가
주민만족행정을 위한 첨병노릇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행정서비스 개선이 "수박겉핥기식"으로 겉돌고 있다는 지적
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창구민원 위주로 절차의 기술적인 면만
개선되고 있을 뿐 기본적인 "삶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의 욕구를 제대로 받아들여 지역특성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모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
된다.
대외홍보를 위해 사전에 충분한 조사없이 무리하게 시행해 실적이 거의
없는 예산낭비 전시행정을 펼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24시간생활민원 기동처리반"이나
"지하철.은행등에 대행민원실 설치운영" 또는 "동사무소 휴일민원처리제"등
은 시행후 거의 업무실적이 없어 유명무실해진 사례들로 꼽힌다.
서울의 경우 자치구의 불법주차단속 사전예고제같이 시의 교통정책과
어긋나는 행정을 펼쳐 자치단체간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주민 손으로 뽑힌" 민선자치단체장이란 장점이 오히려 전시성 행정을
부추키는 단점으로 뒤바뀌고 있는 셈이다.
김의재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민선시대를 맞아 각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행정서비스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일부 전시행정에 대해서는 "민선시대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유재현 경실련사무총장은 "주민의 표를 의식해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
하기보다는 지역의 미래를 제시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행정을 펴나가는
것이 진전한 행정서비스개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준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