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식 고려대 총장(60)이 21세기 세계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화
사회의 보편적 특성에 우리 고유의 문화적 전통이 결합돼야 함을 역설한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정신세계사 간)를 출간해 화제다.

"우리 전통문화에는 예로부터 가정과 이웃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존중.인간사랑의 정신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의 시대인 후기산업사회를 지나 앞으로의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의미의 인본주의.인간주의 정신을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하지요"

95년 한해동안 교양강좌 "21세기와 한국전통문화"를 맡아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새롭게 정리했다는 홍총장은 21세기 인류문명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 현재의 한국인에게 어떤 덕목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현대화해야 할
것인지를 조목조목 살피려 했다고 밝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민족은 외래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거의 없습니다.

보편적인 흐름을 재빨리 수용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특성이 있지요.

이는 불교및 유교의 수용, 그리고 서양 과학기술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
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문화와 사상에 대한 저항이 수반되지만 일단 그것이
수용되고 나면 이전의 가치체계가 뿌리째 뒤흔들리는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는 것.

현재의 보편적 가치체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도 과거사회를
지탱하던 유교적 사회질서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꾸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따라서 이제는 보편성에 대한 수용뿐 아니라 우리식 문화의 특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흔히들 기회의 시대라고 말하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우리고유의
문화전통을 이같은 보편성과 접목시킨다면 우리는 세계를 이끄는 문화대국
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홍총장은 또 수많은 민족이 중국에 동화된 동아시아 역사를 볼때 우리
민족이 오늘날까지 고유한 문화와 역사, 주권을 지켜 온 것은 하나의
불가사의이며, 그것은 우리민족의 남다른 문화적 저력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같은 문화적 저력을 현대적 의미로 되살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국가지표는 경제대국이나 군사대국이 아닌 문화대국
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우리를 지켜온 힘" "부정에서 긍정으로" "보편성과 특수성"
"21세기와 효사상" "어제와 오늘" "통일시대의 준비"등 총6개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고려대 국문과 학부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부터 모교교수를 재임해온
홍총장은 78~92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94년 모교총장으로
선출됐다.

특히 민족문화연구소장 재임시 세계 최대 규모의 "중한대사전"을 비롯해
"한국문화사대계" "한국민속대관" 등을 편찬했으며, 저서로는 "육당연구"
"한국전통문화시론" "한국개화사상사" "일제하의 문화운동사" "문화영토
시대의 민족문화" "21세기와 한국전통문화" 등이 있다.

< 김수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