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달러 정책을 놓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달러화가 1백9엔대를 지나 1백10엔대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도 미정부가
달러고정책을 고수하자 "업계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미재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

미국은 그동안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달러고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달러고로 미수출전선에 차질을 빚게 되면 주식시장이 침체될테고
채권시장도 동반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책이 "불안정"을 초래하는 역효과를 내게
된다는 얘기다.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입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도 투자자들의 표를
의식해서다.

그러나 "재계" 역시 클린턴대통령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표밭이자
돈줄.

재계를 무시했다간 재선레이스에 커다란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달러 정책에 관한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놓인 셈이다.

달러고 고통을 가장 큰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는 것은 미자동차업계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최근 달러화가 1백9엔대로 올라서면서 달러저를 호기로
삼아 일본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 "흔들"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크라이슬러는 5일 "달러고는 수출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동병상련 입장에 있는 포드자동차도 TV인터뷰를 통해 "달러고가 도를
지나친 상태"라고 동조하고 나섰다.

빅3중 2개업체가 반달러고 연합전선을 펴자 미자동차공업회도 "현수준
이상의 달러고는 미 전산업계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원유세에
나섰다.

사실 미국재계로서는 가슴이 "덜컹"할 만도 하다.

빅3는 물론 제너럴일렉트릭(GE)등 "경쟁력에는 자신있다"는 업체들도
그동안 달러하락의 덕을 톡톡히 봤다.

90년대이후 침체에 허덕이던 미업계가 수출채산성을 개선하고 영업이익을
늘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달러저였다.

특히 최대 라이벌인 일본기업들에 대한 경쟁력제고에는 달러고의 약효가
절대적이었다.

펩시콜라와 맥도널드등 해외매출의 비중이 높은 다국적기업들도 달러저를
계기로 수익곡선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재계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미금융당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냉랭하다.

루빈재무장관은 6일 미하원 세입세출위원회에 참석, "수출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인은 환율이 아니라 경쟁력"이라며 "현재 미국의 수출시장은 달러고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의 강한 달러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환율을 무역교섭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미기업들의 이익은 여전히 호조를 계속하고 있으며 대일수출도 올들어
2자리 숫자의 높은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는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 재계의 통증호소를 "꾀병"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게 미정부의
내심이다.

증시에 "빅3 회장이 오는 11일 루빈 재무부장관과 회합을 가질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가시방석에 앉은 미정부의 어려운 입장을 반영해
주고 있다.

시장관계자들은 이에대해 "미정부가 달러고정책을 거둬들이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 망령이 어른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달러고"라는 미끼로 해외 투자가를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환율얘기가 나올때마다 정부관계자들이 "달러고는 미국익에 부합한다"는
말을 들먹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요즘처럼 증시투자가 대중화돼 있는 상황에서 대선을 앞둔 클린턴
행정부에게 증시안정은 재선을 향한 필수 "관문"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달러화가 1백10엔대를 넘어선 후에도 미국정부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선거와 경제"라는 복잡한 함수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미정부의
묘수찾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