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경제 패턴의 파괴".

올초 일본의 언론들이 오디오 전문업체인 럭스만 주가의 급등을 두고
붙인 제목이다.

럭스만은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인수한 일본의 고급 오디오전문업체.

럭스만 주가는 인수직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 12월엔 9백엔대에
진입했다.

올들어선 다시 1천엔 고지를 돌파하더니 최근엔 1천1백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인수당시 주가(2백30엔)와 비교하면 1년만에 무려 5배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기러기 경제패턴"이란 일본이 여타 동남아 국가를 거느리고 경제발전해
나가는 구조를 일컫는 말.

마치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

"일본식 경영"도 실패한 럭스만을 한국 기업이 회생시켰다는 사실에
일본 언론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언론의 "호들갑"은 일본을 정점으로 한 한국.동남아국가간의
수직적 분업체제가 무너져 간다는 우려인 셈이다.

국내 기업이 일본 상장업체를 사들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고 있는
"럭스만"은 이렇게 인수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는 또 럭스만 인수 이후 빠른 속도로 경영을 정상화시켜 나가는
"삼성식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삼성은 어떤 경영시스템으로 럭스만을 회생시켰을까.

"삼성의 경영문화와 럭스만의 오리지낼러티를 조화시켰다"(박천웅
전략기획실 부장.럭스만 담당)는 게 정설이다.

통상 인수업체에 대해서는 각종 리엔니지어링을 통해 "쥐어짜기식"관리를
펴나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삼성은 럭스만의 R&D(연구개발)형 조직체계를 존중했다.

또 그룹일원으로 럭스만 직원에게 새로운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각종
장치를 만들었다.

신사옥을 마련해 주고 사원들에겐 전자의 기흥공장을 견학시켰다.

언제나 중심은 "럭스만형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이었다.

"섣불리 특정 경영방식을 고집했다가는 죽도밥도 안된다"(전략기획실
관계자)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삼성이 3억7천8백만달러를 들여 인수한 AST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AST팀"은 최근 미국 포트워스지역으로 급파됐다.

이 팀의 과제는 "AST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은 무엇인가"(김재명
전략기획실 이사)다.

공장라인의 배치에서부터 근로자의 작업 효율성등 엔지니어링 관련
분야가 집중적인 분석 대상이다.

"삼성의 생산기술과 AST의 원기술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낸다".

삼성전자가 AST 지분 40.25%를 인수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이 방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AST팀이 파견된 것은 삼성이 제공할 생산기술이 실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적자가 올해 1.4분기에만 1억달러를 넘었다.

삼성이 인수하기 전까지를 합하면 누적적자는 모두 4억달러에 달하게
됐다"(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백명의 종업원을 정리해고 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때 AST가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삼성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친다.

기본전략을 수정할 움직임도 없다.

삼성측은 이같은 자신감의 배경에 대해 상황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AST는 분명 적자다.

또 적자폭이 당초 생각한 수준보다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AST인수전략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적자는 예상한 것이었고 아직은 통제 가능한 범위내에 있다"
(삼성전자 박노병 전무.PC사업본부장)는 의미다.

AST가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93년 탠디사를
인수한 후유증 때문이다.

인수 이후 리스트럭처링 과정에서 구매나 생산등 물류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진 것.

따라서 삼성은 자신의 강점인 PC핵심부품과 주변기기의 안정적 공급
능력을 통해 AST경영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최근엔 애플의 2인자 이안 데일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역시 철저한 "현지자율 경영"을 위해서다.

일본땅에서 신화를 만들어낸 한국식 "자율경영 시스템".

세계 6위 PC업체인 AST의 경영에서도 이는 적용되고 있다.

꽃을 피우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