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조합법 제12조는 노동조합이 1)공식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수 없고 2)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할 수 없으며 3)노동조합기금을 정치자금에 유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다.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복지증진 및 경제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중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면 자녀들에 대한 과다한 사교육비의 지출, 주택가격의 폭등, 노후
보장의 미비, 후진적인 의료서비스, 조세의 불공정문제 등은 개별기업장
에서의 교섭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노동자의 삶의 질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정당과 각종 사회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특히 산별연합단체나 총연합단체 노동조합은 주로 이러한 국민경제적 정책
목표의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현행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은 바로 노조 상급단체의 무용론으로 연결되며, 실제로 이것이
상급단체의 역할을 위축시켜 온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이다.

따라서 이제는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을 하는 궁극적 목표가 정권획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에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어떠한 명분과 실익도 없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노조의 정치활동을 허용함으로써 단위사업장 노조는 사업장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국한해 교섭하고, 상급단체는 사회단체와 정당을
상대로 국민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분업구조가 확립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단위사업장에서의 교섭비용을 낮추고 국민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이라는 목적을 도외시
한채, 정치활동을 주목적으로 하거나 정당의 지배하에 놓인다든지 혹은
노조의 정치활동노선으로 인하여 개별 노동자의 정치적 신조나 정치적 활동
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그 본래의 목적을 수행
하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단위사업장에서 정치활동 문제로 산업평화가 파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사업장 단위노조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적정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조법 제12조 이외에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다른
관련 법들, 즉 정치자금법 제12조, 통합선거법 제10조 제81조 역시 위와
동일한 논리선상에서 이번기회에 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어수봉 < 노총 중앙연구원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