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치고 초보자용 컴퓨터입문서
한번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면 한두장 정도만 훑어보다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수가 허다하다.

"까짓거 몰라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 없는데 뭐"하는 생각과 함께
새책엔 어느새 뽀얀 먼지가 쌓인다.

한때 "왕컴맹"이었던 개그맨 전유성씨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국으로 유학간 후배가 "앞으로는
컴퓨터를 모르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배우길 권유한게 계기였습니다.

후배가 골라준 책도 읽었는데 온통 모르는 용어투성이라 조금 보다
그만둬 버렸죠.

그때가 86년이었습니다"

그의 뇌리에서 사라진 컴퓨터가 다시 관심권에 들어온 것은 지난93년
결혼후 한 친구가 컴퓨터를 선물하면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는 각오로 임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겨우 켜고 끄는 것만 배워 고스톱게임만 줄기차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위에선 저를 굉장히 신기하게 보더군요.

컴퓨터도사인줄 알고 말이죠"

그가 자판을 익히고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등 본격적으로 컴퓨터수업에
나선 것은 담배를 끊으면서부터다.

"30년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으니까 여러가지 금단증세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밤에 잠이 오지 않더군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컴퓨터였죠"

잠도 안오는데 자판이나 익혀보자고 컴퓨터앞에 앉게 됐지만 이제는
PC통신 나우컴에 방을 만들어 통신할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의 출판이후 주위에선 그가
컴퓨터를 꽤 잘하는 것으로 보지만 본인은 아직 초보라고 말한다.

이제 컴퓨터에 맛을 들인 정도일 뿐이라는 것.

전씨가 컴퓨터와 친해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철저한 "맨투맨"전략.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되고 의문이 생기면 주위의 컴퓨터를 잘다루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때론 곤히 잠든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부부생활에 적지 않은 장애를
주기도 했다고.

그는 초심자가 컴퓨터책을 볼때는 반드시 컴퓨터를 켜놓고 직접 자판을
두드리면서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또 처음부터 꼼꼼히 보지 말고 수련장이나 문제집 풀듯이 가볍게 볼
것을 권유한다.

"간혹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컴퓨터책을 영어사전같이 생각하고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그때 찾아서
보는 거죠"

그가 컴퓨터를 활용하는 때는 주로 원고작성이나 PC통신을 할 때.

예전에는 빵집에서 중.고교생들을 만나 유행하는 유머를 얻어듣곤 했지만
이제는 유머란에 들어가 검색만 하면 된다.

스케줄관리나 명함관리는 기본.요즈음은 곧 있을 유럽여행에 대비해
여행동호회의 정보를 챙기느라 분주하다.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직접 부딪쳐 보고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재미만큼 살아가는데
활력이 되는건 없다고 봅니다"

< 김재창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