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경 < 중소기업은행장 >

독도문제를 계기로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첨예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만 대응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국민성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국화와 칼"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무렵인 1944년 미국정부의 위촉을
받은 저명한 인류학자 루드 베네딕트가 쓴 것이다.

이 책의 집필을 위촉한 미국인의 관심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방
일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데 있었다.

전쟁이란 급박한 상황에서도 적의 문화적 특성까지 치밀하게 연구하려는
미국인의 자세가 놀랍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면 거기에 만족하고 복종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태평양전쟁은 이같은 "알맞은 위치"를 찾기 위한 일본인의
욕구가 일본내부가 아니라 바깥으로 확대,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은 인생을 채무.채권자의 관계로 인식하려 한다.

일본인은 빚이나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을 견딜수 없는 수치로 여길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신에 대한 모욕이나 비방에 대해서도 반드시 빚을 갚아야
한다.

일본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것은 채권.채무같이 철저한 방정식의 세계인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본인은 이책의 제목 "국화와 칼"이 상징하듯,
섬세함과 호전성이라는 뚜렷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그 이중성이 종종 상황적 기회주의로 나타남은 물론이다.

지금 일본은 한국과 일본사이에 뭔가 맞지 않는 방정식이 있다고 믿고
독도를 구실로 한국에 대한 그들의 "알맞은 위치찾기"에 나선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극일을 위해서는 분노하기에 앞서 일본인의 이 철저한
방정식의 세계는 물론 뚜렷한 이중성의 실체를 냉철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경제분야에서도 이 과정이 선결돼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그런 점에서 더더욱 읽어볼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