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0년 1월3일 오전5시.

경기도 김포에 있는 전원주택에 사는 김컴맹씨는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

대망의 21세기 첫출근날인 탓이다.

어느덧 21세기.

그렇게 아득하기만했던 21세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아침운동을 마친 김씨는 마음을 다잡으며 경제전문 위성방송을 켰다.

방송에서는 21세기 재테크요령과 기업움직임 증시전망 주요 경제뉴스 등을
열띤 목소리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쉬어가는 시간.기업과 은행의 주요 행사를 소개하는 코너가 김씨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지난 98년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글로벌은행이 21세기를
맞아 고객에 대한 사은행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5,000만원이상을 1년동안 맡길 경우 선착순 3,000명에 한해 보너스 금리
연2.523%포인트를 더준다는 것이었다.

현재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는 연5.10%.절반이나 더 얹어준다는데 김씨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씨티은행이 지난해말 실시한 사은행사에서 제시한 연6.827%
(정기예금금리 5.075%+보너스금리 1.752%)보다 0.796%포인트나 높으니
그럴만도 했다.

김씨는 즉시 노트북PC를 켜서 글로벌은행을 찾았다.

화면에 나타난 은행원은 벌써 가입예정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직 보너스금리적용시간인 오전9시가 되지 않았으니 예약을
해두라"고 했다.

김씨는 반도은행의 자유저축예금계좌에서 1억원을 찾아 글로벌은행에
예치했다.

통일은행은 지난해말 동화 하나 보람 평화등 4개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21세기초부터 일이 잘 풀렸다는 뿌듯함으로 집을 나선 그는 서울광화문에
있는 회사로 향했다.

지하철 김포역에서 IC카드를 카드리더에 통과시켰다.

IC카드를 사용한지 벌써 2년이나 지났지만 사용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카드 한장이면 버스요금과 지하철요금은 물론 백화점과 재래시장에서도
물건을 살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갑도 필요없어졌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도 손수건이 전부다.

전철에 앉아 김씨는 절친한 친구인 제테크씨를 떠올렸다.

이재에 밝기로 유명한 제씨도 틀림없이 국민외환은행의 사은행사뉴스를
봤을 것이다.

그리곤 재빨리 집을 나와 인천으로 갔을 것이다.

김포에 남아있던 국민외환은행의 마지막 유인점포가 지난해 12월 폐쇄됐기
때문이다.

인천지점에 도착한 제씨는 아마 은행문을 여는 오전9시30분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제씨는 지난 80년대 후반 부동산투자로 떼돈을 벌었다.

그뒤 부동산가격이 폭락할 조짐을 보이자 제씨는 재빨리 부동산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한국경제가 다시 용틀임을 시작한 98년 주식에 손을 대 역시
짭짤한 재미를 봤다.

그뒤 눈을 돌린게 금융상품이다.

그러나 제씨는 한가지 단점을 갖고 있다.

도무지 기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손님이 없어져 유인점포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데도 제씨는 은행원이
있는 유인점포만을 고집하고 있다.

당초 컴퓨터하고는 거리가 멀어 놀림감이 되곤했던 김컴맹씨 자신도 앉아서
가상은행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회사에 도착하니 지난해 입사한 홍전자군이 새해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도움을 요청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지사에 6,000만달러를 송금해야하는데 펌뱅킹작동이
안된다는 것이다.

신세대인 홍군이 새내기인 탓에 텔레뱅킹서비스이용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다.

김씨는 즉시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 전화기는 소형스크린과 카드리더 키보드등이 부착된 이른바 "스마트폰"
이다.

김씨가 수화기를 들고 IC카드를 카드리더에 넣자 전화번호를 누르라는
지시가 나왔다.

지시대로 키보드를 작동하자 산업투자은행에서는 외화예금잔액이 5,000만
달러로 1,000만달러가 모자라니 1,000만달러를 더 송금해야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는 "환율시세를 알고 싶으냐"고 물어왔다.

알고 싶다고 했더니 현재 시장환율은 달러당 490원이라고 스크린에
새겨졌다.

불과 4년전의 달러당 780원보다 37.2%나 원화가 평가절상된 것이다.

김씨는 원화예금에서 돈을 찾아 1,000만달러를 바꿔 오클랜드지사에 송금
했다.

그리고 3분후 비디오텍스에 오클랜드지사장이 나타나 새해인사를 건네며
"보내준 돈을 잘 받았다"고 웃음을 지었다.

새해 첫날을 즐겁게 근무한 김씨는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을 축하하기위해 도중에 24시간코너에 들러 간단한 케이크를
샀다.

물론 값은 전자지갑기능을 가진 IC카드로 치렀다.

카드리더에 IC카드를 통과시킨후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면 자기 예금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든지,잔액이 모자라면 자동대출될
것이었다.

김컴맹씨는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후 느긋한 마음으로 노트북PC로
글로벌은행을 찾았다.

아침에 예약했던 사은예금가입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자기계좌에 접속했더니 이런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21세기 정보화은행을 선도하는 글로벌은행의 고객이신 김컴맹손님을 진심
으로 환영합니다.

손님께서 예약하신 사은예금은 1,021번째로 가입됐습니다.

계좌번호는 12-345-6789번이고 만기는 2001년 1월2일입니다.

만기까지 금리는 연7.623%가 적용되며 만기후 원리금은 1억762만3,000원
입니다.

물론 이자는 수시로 찾을수 있습니다.

오는 12월31일 3,000명의 가입자중 100명을 추첨해 연5.0%의 금리를 추가로
얹어드리기로 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