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가장의 이모나 삼촌이 돼주세요" 서울 강남구가 이같은
캐치 프레이즈아래 소년소녀가장이나 형편이 어려운 모자가정,부자가정등에
일상생활전반에 걸친 상담과 후원역할을 해 줄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회운동을 펼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서울시도 지난달 각 자치구에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정신적 후원자를 맺어주는 사업을 추진토록 협조공문을 보냈고 이에
호응,동대문 노원구등이 동참을 선언하는등 결연사업은 크게 확산되고
있다.

당초 이 운동은 지난 94년 수서동에서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개인차원에서
처음시작했다.

그뒤 본격적으로 운동이 벌어져 현재 30여명이 소년.소녀가장의
이모와 삼촌이 됐다.

강남구는 이 운동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자 전체 동사무소를
대상으로 소년.소녀가장 뿐만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모자가정등으로
확대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중퇴가 최종 학력인 소년가장 최모군(19.서울 강남구
수서동)은 동사무소에서 맺어준 이모를 만난 이후 생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경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93년이후
최군은 두살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16살의 어린나이로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피곤한 삶에 지친 최군은 결국 탈선의 길로 접어들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오토바이 절도로 95년 3월 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했다.

문제아로 낙인찍힐뻔 했던 최군은 문모(38.여)씨를 만나면서 인생을
새출발하게됐다.

문씨는 작년초부터 일주일에 1~2번 집에 찾아가 집안일을 돌봐주고
대화를 나눴지만 이들 형제와 친근감을 형성하는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최군이 급기야 구치소에 가는 처지가 됐을 때 문씨는 이들 어린
형제에 대한 자기의 애정이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도 같은 처지가 될수있다는 생각에 최군의 옥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문씨의 사랑은 결국 이들 형제에게 가족같은 정을 느끼게 만들었고
최군을감화시켰다.

그는 출감후 오전9시부터 11시까지 검정고시학원을 다니고 밤9시까지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하며 고학을 하는등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때 제 아들에게 동화책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
저 아이는 이제 제 혈육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며 문씨는 환한미소를 지었다.

강남구 수서동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성일,성삼
쌍동이 형제의 케이스로 이모.삼촌맺기운동의 성과로 꼽힌다.

병으로 세상을 뜨고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 두 형제는
8년째 소년가장으로 남아있다.

이들 형제들의 아파트 부근에 살고 있는 방모씨(45.여)는 지난
94년봄에 이모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생활태도를 바꾸더니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는 방씨는 한사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권문용강남구청장은 "물질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정신적인 보살핌이 더욱 절실하다"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 사업이 소중한 밑것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남국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