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께서 그간 투병생활에 계심은 알았으나 막상 저희 후배들을 뒤로
하고 앞서 가시니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희에게도 아직도 회장님의 인자하시면서도 매사에 사와 공을 분명히
가리는 강직한 인품으로 우리의 나아갈 지표를 알려 주시던 생전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기만 합니다.
회장님은 엄청난 굴곡으로 점철되어온 우리 근대경제사의 산 증인이자
경제계의 거목이셨습니다.
회장님은 전후 경제계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단순한 경제인의 차원을
뛰어남어 저희 모두의 마음에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은 고격한 인품을 바탕으로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는 기업인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민족의 생존기반이 될 산업을 일으켜 경제입국을 이룩한다면 회장님의
소신은 1946년 민족기업 경방의 경영을 맡은 이후 주식분산을 가속화하고
종업원지주제를 확립한데에서도 깊게 배어 있습니다.
항상 과욕을 경계하시던 회장님은 새로운 시대의 기업인상을 정립하는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자임하셨습니다.
"기업인은 기업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기업이윤
은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기업인은 다만 창업의 보람을 느껴야 한다"며
기업인의 역할과 자세를 강조하시던 회장님의 뜻은 오늘을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재계의 구심체로 성장한 전경련의 초석을 마련하는데에
모든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기업인의 단합과 협력의 구심점으로 전경련을 이끌어 오시던 회장님은,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를 헤쳐 나갈수 있는 지혜와 용기의 길로
저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많은 산업이 자금난에 처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때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건의해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오늘의 기반을 쌓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던 일화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며 회장님의 탁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자금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살아가며 21세기를 눈앞에 둔 저희들에게는
아직 경제계 원로이신 회장님의 깊은 경륜과 일념통천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수 없는 이 세상 저쪽 편으로 훌쩍
건너가신 회장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새로워집니다.
남아있는 저희는 안분지족의 정신으로 평생을 후회없이 살다 회장님의
유덕을 기리고 받들며, 남겨 놓으신 이 땅의 일들을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부디 파란만장했던 그 시절의 그 무거운 짐을 벗으시고 이제 편히
쉬소서.
두손 모아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1996.1.18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