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를 임대해 쓰고 있는 P, K, L씨는 상가관리업체가 신용금고에서
돈을 빌리도록 명의를 빌려줬다.

그런데 관리업체가 대출이자와 원금을 제대로 갚지 않자 금고는
P씨 등에게 나머지 돈을 변제하라고 청구해왔다.

이에 P, K, L씨는 명의대여 대출이 금지돼 있는데도 금고가 관리업체와
공모, 자신들의 명의로 빌려준 것은 부당하다며 은행감독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경우 결론부터 말하자면 P씨등은 꼼짝없이 빚을 대신 갚아야 한다.

금고는 실질차주가 빚을 못갚으면 법적으로 명의대여자에게 상환을
청구하는 "정지조건부 상환청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막 시작한 중소기업체는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매출실적이 아직 없는데다 신용도 약해 은행대출은 쉽지 않다.

따라서 동업체나 가까운 친구의 사업체 명의를 빌려 돈을 끌어쓰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순수하게 시작한 경우라도 실제 돈을 빌린 차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실질 차주가 부도를 내거나 잠적해 버린다면 단순히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그야말로 차주가 돼 빚을 대신 갚아야 한다.

이런 사고가 발생한 뒤 은행감독원에 호소해봐야 이미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감원은 명의대여 대출 자체를 위규사항으로 규정하고 은행등
금융기관에게도 이를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받는 사람과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이 금융기관 직원도
모르게 담합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명의를 빌려준 친구 등이 서류상 완벽하게 차주가 돼있으므로
금융기관 종사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은행직원이 명의대여 대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도 대출계약
자체는 유효하다.

단지 은행직원은 업무처리 위규로 징계를 받는 정도에 그친다.

결국 명의를 빌려주는 것은 다른 보증과 비교해 큰 위험이 있다.

명의대여후 발생하는 모든 책임이 명의대여자에게 있다.

실질 차주에게 아예 기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명의대여는
해주어선 안된다.

< 정구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