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것은 국내 기업에 총수들의 "해외 상주경영시대"가 열려가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김회장에 앞서 대우그룹 김우중회장도 집무실을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옮기기로 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일본내 사업비중이 높은 롯데그룹의 신격호회장은
"홀수달은 한국, 짝수달은 일본"에 머무는 식으로 1년의 절반을 일본체류
경영에 할애하고 있다.
이처럼 총수들의 해외상주가 잇달고 있는 것은 글로벌시대를 맞아
주요 대기업그룹의 사업 무게중심이 국내에서 해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삼미그룹의 경우 지난 92년이래 주력업종으로 추구해 온 특수강산업의
본거지가 한국에서 캐나다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삼미종합특수강이 연산 1백5만t에
연간매출 1조원으로 캐나다의 삼미아틀라스와 알텍특수강의 연산
50만t과 7억달러매출(약 5천6백억원)을 앞서 있다.
그러나 삼미그룹은 향후 캐나다쪽을 집중 육성해서 2000년에는
이 아틀라스와 알텍의 연간 매출을 25억달러(약 2조원)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캐나다증시에서의 주식공개와 설비증설 5개년계획 추진 등
경영의 중심축을 캐나다쪽으로 옮길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대우그룹측 설명도 비슷하다.
대우는 현재 체코(아비아) 루마니아(로대) 폴란드(FSO.FSL)에 자동차
생산법인을 갖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사도 인수를 추진중이다.
또 영국과 독일에 자동차 연구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다 TV VTR 세탁기
등 전자분야에서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대규모 생산 및 연구기지를
가동중이다.
그룹의 경영모토인 "세계 경영"의 중심 무대를 유럽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김회장이 직접 유럽의 "사업 수도"인 오스트리아 빈에 사무실을
마련해 상주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대신 국내사업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김으로써 "분권 경영"이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주까지는 아니지만 이건희삼성그룹회장 최원석동아그룹회장 정인영
한라그룹회장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해외사업거점에 장기 체류하면서
현지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케이스다.
이회장의 경우 출장회수가 잦지는 않지만 한번 나갔다 하면 최소한
한달, 길게는 두달도 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재계에 개혁신드롬을 몰고 온 도화선이 된 신경영구상을
지난 93년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전계열사의 사장단과 본부장급
임원들을 총집합시킨채 선언했다.
자동차사업 진출이 한창 무르익었던 지난해에는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관련계열사 사장들을 현지로 불러 자주 회의를
갖기도 했다.
동아 최회장은 리비아대수로공사를 현장 지휘하기 위해 현지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 수시로 출장을 다니고 있다.
한라 정회장은 올해 2백일이 넘는 해외출장기록을 세운 장본인이다.
외국에서는 총수의 해외상주를 넘어 본사 자체를 외국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일본 유통업체인 야오한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본격적인 글로벌경영을 선언하면서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했다.
물론 회장과 그 가족도 홍콩으로 따라 이사했다.
홍콩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등 전략
시장인 아시아지역에서 사업의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에서다.
국내 기업 총수들의 잇단 해외체류경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가피해진 "세계화 경영"이 그룹 오너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상품 <>지점 <>생산법인의
단계를 넘어서 "오너의 해외진출"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기업그룹의 본부 자체가 해외로 옮겨지고 있다고
보아 틀림없다.
바야흐로 한국의 재계가 세계화와 분권화라는 두개의 큰 흐름을
타고 새로운 변혁의 노정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