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이 축재비리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중 2천8백38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태우
피고인(63)에 대한 첫 공판이 18일 오전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는
노씨를 비롯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을 비롯, 대우그룹 김우중회장,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등 기업인 9명과 이현우 전경호실장,
금진호 의원, 김종인 전경제수석, 이원조 전의원등 노씨의 핵심측근 5명등
모두 15명이 피고인석에 섰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이 생략된 채 재판부의 인정신문에
이어 곧바로 이 사건 주임검사인 문영호 대검중수2과장등 공판참여 검사
4명의 직접 신문이 이루어졌다.

오전 10시25분께부터 1시간40여분간 문과장이 진행한 직접신문에서
노피고인은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기업인들로
부터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검찰측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노피고인은 그러나 "이 돈은 취임초나 명절, 연말 등에 정치자금이나
성금명목으로 관례상 받은 것일 뿐 이권의 대가로 받은 것은 아니다"며
뇌물혐의에 대해서는 일체 부인했다.

노피고인은 특히 최대 초점이 돼 온 비자금의 92년 대선자금 유입여부에
대해서는 "만일 내가 이를 밝힌다면 국가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만큼 말할 수 없다"고 진술해 비자금중 상당액이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음을 간접 시인했다.

노피고인은 또 "비자금 사건이 폭로된 직후 이현우전경호실장에게 지시,
기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자금내역이 적힌 장부를 폐기했다"고 말해, 비자금
장부가 존재했으며 이 장부가 파기된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에대해 이전실장은 "지난 10월20일 노전대통령이 연희동자택2층에서
쇄절기를 이용, 비자금장부를 직접파기한 것으로 알고있다"며 노씨의
진술을 부인했다.

노피고인은 대우 김회장과 한보 정총회장의 비자금 변칙 실명전환과
관련, "변칙 실명전환은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진술해 금융실명제 실시로 비자금이 묶이게 되자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
돈을 빼내려 했음을 시인했다.

노피고인은 또 "왜 1천8백억여원이나 되는 많은 돈을 남겼놔느냐"는
검찰측 신문에 대해 "후에 큰일을 위해 쓰려고 남겨 놨으나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오후 2시30분부터 속개된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직접신문에서
이들은 대부분 "노전대통령에게 돈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는 반대급부를
바라고 준 뇌물이 아니라 관례적으로 또는 준조세 성격으로 준 일종의
성금"이라며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대림그룹 이회장은 기업총수로는 유일하게 "아산만 해군기지
공사등 대형 국책사업등을 따내기 "배려를 해달라"며 돈을 줬으며 구차한
변명은 하고 싶지않다"며 혐의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이에따라 2차공판부터는 비자금이 뇌물인지를 놓고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공판은 내년 1월15일 오전10시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 윤성민.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