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대목을 앞둔 유통업계가 한파에 휩싸여 있다.

경기하강국면에서 불거진 비자금파문과 5.18수사의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가 민간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재래시장을 비롯한 유
통업계 전반에 연말대목이 실종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겨울용품장사로 한창 일손이 바빠야 할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등
재래시장에는 고객들의 발길이 격감,상인들이 한숨을 쉬고 있으며
바겐세일로 반짝특수를 누리는 백화점들도 세일이 끝난후면 한동안
매장이 텅빌 것을 우려해 벌써부터 근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식품,생활용품업체들은 최근의 시장동향에 비추어볼때 연말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판단,선물세트제작에 신중을 기하는 표정
이 역력해지고 있다.

남대문시장의 경우 지방소매상인들을 태우고 올라오는 버스가 11월
초만해도하루70대 안팎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약50대로 줄어들었다.

남대문시장의 이재수과장은"지난해 12월초만 해도 하루1천5백명이상
의 지방상인이 시장을 찾았으나 요즈음에는 1천1백명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같은 추세라면"연말경기는 기대조차 할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동대문 평화시장의 박래식상우회장은"겨울의류는 12월한달이 최고
피크타임인데 올해는 초반부터 장사가 유난히 힘겹다"며 자신의 가죽
의류가게를 찾는지방소매상들도 지난해 12월에는 하루30명을 넘었으
나 최근에는 10여명으로 절반이상이 줄었다고 푸념했다.

용산 터미널전자쇼핑의 김태성상우회장은"연말이라 자금수요는 많
아지는데 매출은 지난해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주상인들의
한결같은 걱정이라고털어놨다.

그는"연말에 있을 건물주와의 임대료협상을 앞두고 상인들이 임대
료를 20%낮춰달라고 요구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오죽하면
이같은 얘기까지 나오겠냐"고 반문했다.

가전양판점인 하이마트용산점의 한관계자는"지난해에는 11월까지
매출이 계속 상승커브를 그렸으나 올해는 비자금파문이 터져나온후
11월매출이 10월보다 오히려 20% 줄었다고 밝히고 전자상가의 전체
분위기가 영 썰렁해졌다고 말했다.

전자상가내 케이스컴퓨터의 고영대씨는"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컴퓨
터는 매기가다소 살아나겠지만 요즘같아서는 별 기대를 걸수가 없다"
며"12월매출이 지난해보다 최저 30%이상은 줄 것같다"고 걱정했다.

연말경기에 대한 걱정은 슈퍼체인업계도 비슷,한화유통,LG유통등은
연말선물세트 매출신장목표를 예년의 10%선에서 7-8%선으로 낮춰잡고
있다.

식품업체중 오뚜기식품은 연말선물세트 판매목표를 아예 지난해와
같은 1백만개로 책정해 놓고 있다.

이회사의 최광명기획과장은"판매목표를 해마다 전년대비20%이상 늘
려잡았지만 올해는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해 선물수요가 크게 줄것으로
판단,판매계획을축소할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10일까지 세일을 치르는 백화점들은 반짝특수를 누리고 있지만"그
레이스백화점의 한관계자는 세일이 끝나고 나면 매장이 텅빌 것이 뻔
해 연말대목이 걱정된다"고 귀띔했다.

불안조짐이 확산되고 있는 물가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소
비심리위축과 함께 연말경기를 더욱 냉각시킬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물가는 쌀이 15년만에 생산량이 최저치를 기록함에 따라 일반미상품을
기준,80kg 1가마가 최근 17만원선으로 치솟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고 본
격적인 김장철을 맞은 배추도 상품이 포기당 2천원선으로 지난해 동기보
다 2배나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현상에 대해 삼성소비자문화원의 조은정박사는"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고 사원들의 필수지출도 단속하는 분위기가 일반소비자들
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사회적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소비경기
는 위축될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