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숙씨(50)의 소설집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삶의 무게와
깊이를 넉넉하게 담고있다.

마흔다섯에 등단한 늦깎이작가의 필치는 삶의 겉모습보다 그 속에 깃든
영혼의 울림을 그리는데서 더욱 빛난다.

그의 작품들은 질곡의 시대를 짊어지고 가는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데올로기의 상흔이 짙게 배어있는 그의 가족사는 중편 "아버지의
임진강"이나 첫장편 "해바라기"를 낳게 한 가장 큰 모티브.

이번 창작집에서는 가족의 범위가 보다 좁혀져 있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도배하는 여인.

열두살짜리 딸을 혼자 두고 일나갔던 그녀는 이웃집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어린 것을 보고 넋을 잃는다.

어릴때 의붓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되살아나면서 그 "짐승"을 칼로
찌른 뒤 감옥에 갇힌 그녀는 딸이 정신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절망한다.

어머니와 나,딸로 이어지는 불행의 끈을 상처받은 인간의 내출혈로 드러낸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름진 삶의 내면을 감옥창밖의 경계진 풍경과 대비시켜
보여준다.

노인문제를 다룬 단편 "은빛 날개"와 딸의 방황으로 괴로워하는 부모얘기인
"빈 나뭇가지", 40대 가장의 과로사를 그린 "돌배꽃 피는 배내골"등도
현대사의 편린을 "가족"으로 감싸안는 작가의 품을 느끼게 한다.

"기회가 되면 한.일현대사에 얽힌 얘기를 써보고 싶어요" 해방둥이인
안씨는 평양태생으로 숙명여대를 졸업했으며 90년 "문학과 의식"에 중편
"아버지의 임진강"이 당선돼 등단, 같은해 시집 "멀리 두고온 휘파람 소리"
를 냈다.

장편으로는 "해바라기"(91)와 중년여인의 자아찾기를 그린 "역마살 낀
여자"(93), 월남전의 참상을 다룬 "고엽1, 2"(94)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