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법처리 대상기업을 점치느라 분주하면서도 ''이젠 좀 빨리 가라
앉았으면''하고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
이번 비자금파문이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고 각종 경제지표도 서서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권에서 보이는 이전투구식의 행태가 파문의 조기 진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어떤 형식으로든 이번 사건이 빨리 마무리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는 비자금 파문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데 따른 것.
2차 소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4~5개 기업들은 거의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
이들중 일부그룹은 노전대통령 소환이 결국 구속수사로 이어지고 자기그룹
총수의 사법처리로까지 비화되지 않겠느냐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때문에 내년도 사업계획은 물론 신입사원채용등에서도 유동적인 상황이
많아 의사결정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는 실정.
사법처리대상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의 정치권 모습을 보면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아 불안하기
그지 없다"(S그룹 기획담당 이사)는 얘기다.
"어차피 비자금파문은 정치적인 문제가 선행지수 아니냐. 종속변수인
기업을 물고 늘어져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D그룹 K이사)는
항변도 있다.
철저히 파헤치되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번 비자금파문을 이용해 비현실적인 제도를 신설하려는 정부의
행태에도 내심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언제 좋은 제도가 없어서 좋은 내용을 담지 못했느냐"(H그룹
회장실 상무)며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인위적인 제도나 법률만으로 미래지향적인 ''정/경관계''를 정립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잘못됐으면 정치권에서 풀어야지 재계에 계속 비수를 꽂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건전한 기업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권 스스로도 기업에 손을 벌리는
구습을 없애야 한다"(S그룹 P이사)는 말이 재계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