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을 소환조사했던 대검중앙수사부 안강민부장은 5일
기자브리핑에서 "정회장이 비자금 5백99억원을 노전대통령 돈인줄 사전에
알고 실명전환해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한보그룹이 줄기차게 밝혀왔던 "노전대통령 비자금인줄 모르고
실명전환했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은 한보가 왜 노전대통령 자금인줄 알면서 6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변칙 실명전환했는지로 모아진다.

한보철강 단지조성등 사업자금 마련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숨겨주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이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이에대해 한보측은 단순한 사업자금 조달책이었다고 주장한다.

박대근한보그룹 홍보담당상무는 "당진 철강공장 매립이 지난 93년 12월
완료되기 전까지는 금융기관등에서 한보에 돈을 대주지 않았다"며 "따라서
비자금을 실명전환해 갖다쓴 93년 10월엔 사업자금이 달렸던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상무는 "이런 상황에서 당시 "그 자금"이 노씨 돈인지, 누구 돈인지
가릴 겨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회장은 지난 5월 모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다 보고 누가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여의도 보다 큰 땅이 싹 물위로
올라오니까 그때 가서야 은행에서 설비자금을 지원해 줬어요".

박상무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말이다.

한보는 또 "실명제 직후인 당시엔 정체불명의 괴자금이 시중을 떠돌며
자금난에 허덕이던 기업들을 유혹하던 때"라며 "그 때는 일반 사채자금도
"고위층의 은밀한 돈"이라는등 별의 별 소문이 많아 전주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명제 직후 합법화의 구멍을 찾던 노전대통령 비자금의 정체를
알면서도 변칙 실명전환해준건 노씨의 불법 자금조성을 도와준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6공때 수서택지특혜를 둘러싼 노전대통령과 정회장간의 "특수관계"를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는 지적이다.

한발 더 나가 혹시 정회장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리에 적극
"개입"한게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 "심증"에 불과하다.

노전대통령이나 정회장이 이 부분에 관해 함구 또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어 물증은 없다.

또 사안의 성격상 당사자들이 진술하지 않으면 증명하기도 어려운 부분
이다.

더군다나 정회장이 노전대통령과 짜고 비자금 은폐를 도왔더라도 현행
실명제 관련법상 불법은 아니어서 이 문제가 정회장의 범법여부를 가리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정회장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해준 "진짜 의도"는 그의
"도덕성"과 관계된 문제일 뿐이다.

한편 박대근상무는 6일 대검 기자실을 찾아가 "실명전환한 5백99억원의
전주가 노전대통령인지는 사전에 몰랐다"고 해명했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