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1년 3백65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은행.

가상의 은행이 아니다.

바로 지난달 18일 미국 캔터키주에서 문을 연 인터넷 은행 "시큐리티.
퍼스트.네트워크.뱅크"(SFNB) 얘기다.

고객이 인터넷에 개설된 SFNB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은행 로비모습과 함께
서비스 내용이 화면에 나타난다.

이중 원하는 서비스항목을 마우스로 클릭, 순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잔고확인은 물론 공공요금 지불등 모든 결제를 할 수 있다.

물론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컴퓨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가능하다.

대금지불처및 송금받을 상대가 전자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체크프리"라는 결제.송금서비스 회사가 인터넷을 통해 예금주의 지시를
받아 대신 수표를 보내준다.

이제 SFNB고객들은 은행에 들러 수표를 일일이 부치는 번거러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영업 개시 20시간만에 인터넷을 통해 이 은행을 "다녀간" 고객은 무려
4만명.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은행의 지점은 단 1곳도 없다.

캔터키주 본사와 조지아주 컴퓨터센터 2곳이 전부이다.

종업원도 소프트웨어개발과 은행업무부문의 50여명 뿐이다.

덕분에 은행영업에 드는 경비가 일반 은행의 3분의1에 불과하다.

미은행들은 이미 PC화면을 "은행창구"로 바꾸는 경쟁에 돌입했다.

자본과지점망등에서 밀리는 중.소은행들은 "인터넷 물결"을 타고 "금융
업계 판세뒤집기"를 꾀하고 있다.

"제1가상은행"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전자뱅킹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미
캘리포니아주의 퍼스트버츄얼은 운영 첫해부터 흑자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고객수도 이미 2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대형은행들이라고 가만히 있을리 없다.

미금융업계에서 2,3위를 달리고 있는 뱅크아메리카와 네이션즈뱅크는
지난 5월 금융소프트웨어 업체를 매수했다.

전자뱅킹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케미컬뱅크와 퍼스트시카고등 미 19개 주요은행들은 지난달 26일부터
금융소프트웨어분야의 최대히트 상품인 미인튜이트의 "퀵큰"을 은행전산망에
연결, "전자뱅킹"업무에 착수했다.

미체이스맨해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금융소프트웨어 "머니"와 결합, 전자
뱅킹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전자뱅킹을 통한 송금 수수료는 1회 30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우편을 통해 수표를 부치는 비용보다 싸다.

미국에서 수표가 전체 송금액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자
뱅킹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지 않다.

높은 PC보급율, 다양한 PC통신서비스, 저가의 금융소프트웨어 개발이
맞물려 미국에서는 이제 본격적인 전자뱅킹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부실채권문제등으로 나날이 사그러들고 있는 세계 금융업계의 공룡 일본
은행들.

벼랑끝에 선 이들 일본은행의 위기감은 남다르다.

"전자뱅킹 시대에 한발만 삐끗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불안감이
신중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은행들조차 전자뱅킹 시대를 맞을 채비를
서두르게 하고 있다.

스미토모은행은 오는 12월부터 은행에 들르지 않고도 PC통신망으로 잔고
조회, 입금, 계좌이체등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시한다.

후지은행은 내년 3월부터 24시간 잔고조회가 가능한 전자뱅킹 서비스에
들어가며 산와은행도 1-2년 안에 전자뱅킹 서비스에 착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련시스템 개발을 추진중이다.

이밖에 다이이치간쿄, 사쿠라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도 전자결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미은행경영협회(BAI)의 한 관계자는 금융업계의 전자뱅킹 흐름을 이같이
정리한다.

"세계 금융계에는 최근 M&A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은행업계의 재편속에서
경비절감의 중요성이 급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가삭감의 요체는 지점의
통.폐합이다. 지금 세계 은행들이 찾아낸 지점 통.폐합의 지름길이 바로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자뱅킹이다"

세계 금융업계의 패권은 이제 네트워크시대를 앞질러 가는 측의 수중으로
돌아가게 됐다.

인터넷 돌풍은 금융업계에도 커다란 변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노혜령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