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하경제양성화를 위한 장단기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이번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을 계기로 지하자금의 흐름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해야 하며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작업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도 파악되지 않은 수천억원의 자금이 금융기관을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는데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세탁해 버젓이 비자금을 빼내가는 상황을 더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혐의자"를 찾아내고도 처벌을 못하는 맹점을 어떻게 하든 보완하자는
얘기다.

이번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금융실명제가 헛점을 드러냈다는 대목을 꼽을수 있다.

금융기관이 다른 사람의 자금인줄을 알면서도 제3자가 나타나 실명전환을
요구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전환에 응할 수 밖에 없어 "실명"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마저 대두됐다.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탈세를 방조한 혐의로 처벌을 받게할 길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법적용이 쉽지 않아 오히려 "차명"은 무제한 허용되는 것임을
재삼 확인해주는 계기만 되고 말았다.

결국 마약을 거래하거나 절도로 조정된 자금임이 밝혀지더라도 계좌의
이름을 빌려준 사람은 세금탈루 방조범으로만 다룰수 있게 돼있다.

이와함께 돈세탁을 전혀 막을수 없다는 점도 시급히 보완할 점으로 대두
됐다.

금융기관직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계좌를 옮겨주는등 돈을 세탁해 주어도
감봉이나 징계등의 문책만 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형사처벌은 불가능하게 돼있다.

규정이 없어서다.

돈세탁을 부탁한 사람은 처벌할 근거 조차 없다.

한마디로 돈세탁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마약이나 조직범죄와 관련된 자금에 대해서 신고의무를 부여한 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게 고작이다.

따라서 정부가 내년에 연구용역발주와 조사반파견을 통해 강구하기로 한
제도적 장치는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각종 불법자금의 위장을 위해 차명거래한 사람과 명의대여자에 대한
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실명제긴급명령을 일반법으로 대체하면서 차명거래땐 자동적으로
세무조사를 할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 돈세탁방지장치도 이 법안에 넣을 예정이다.

범죄행위로 규정해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게 정부의 구상이다.

지하자금양성화와 관련, 주목을 끄는 것은 대금업제도의 도입여부에 대한
정부의 방향이다.

현재 정부는 대금업은 당장 도입하지 않고 소비자금융확대 여신금지업종
해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자금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도 사채의존도가 줄어들지 않으면 자금출처를 묻고나서 대금업을
허용한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또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당시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금융거래자료
를 과세자료활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실명제의 근본목적이 공평과세에 있는
만큼 금융거래자료를 과세자료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정부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안상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