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가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소동에 휘말려들면서 경제정책 공백현상
까지 나타나고 있다.

잇따르는 폭로전과 세무 조사설등으로 기업들이 투자결정을 뒤로 미루고
있는 상태에서 중요한 정책결정마저 기약없이 지연돼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대책은 미분양주택 누적에 따른 건설업체 지원책.

당초 이달초에는 확정키로 했었으나 아직 청와대및 당정협의는 물론
관련부처간의 합의조차 끝내지 못했다.

단계적으로 분양가를 자율화하고 미분양주택 구입자에 대한 자금및 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키로 기본적인 골격까지 마련돼 있으나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야 해 내주중반께나 발표될 예정이다.

확정이 늦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서로 만나서 논의할 시간이 없기 때문.

민자당과 청와대 측은 말할 것도 없고 재정경제원의 장차관이 이번 비자금
사건에 불려 다니느라 관련기관과 협의를 가질수 없다는 것이다.

재경원은 이번 대책이 어차피 내년부터나 시행되는 것들인데다 중장기제도
개선에 촛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발표만 남은 정책을 관련부처 협의지연으로 확정하지
못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건설업 대책외에 외환규제 완화방안이나 증권산업 개편에 따른 후속세부
지침, 대금업 도입여부등 연말까지 마련키로 한 굵직굵직한 경제정책들을
손도 대지못하고 있다.

외환규제 완화의 경우 환율변동폭 해외송금및 여행경비 해외부동산투자
확대 등 자본자유화와 직결된 중요한 과제들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기업의 연지금수입 기간과 수출선수금 수령한도 등 기업활동
과 관련된 사안들도 상당히 많이 담겨 있다.

재경원은 이들 사안을 ''연내''로 일정을 잡아놓고도 내부보고 일정을 잡지
못해 세부방안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예산편성과 관련된 국회의 소위원회가 가동되기 시작했으나 직접적
으로 관련이 없는 위원회들까지 온통 비자금사건을 추궁하느라 예산심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경제계에선 과거의 부조리를 청산하는 작업에 진통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기업운영과 정책수립및 집행은 어떻한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상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