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이론가들은 미국경제가 차츰 회복되고 있으며 몇가지 처방만
하면 여전히 대외경쟁력을 지닌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경제사가들은 이제 미국은 더이상 풍요의 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쇠퇴과정에 처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20세기 세계시장을 지배했던 대량생산체제는 그 빛을 잃고 있으며 미국
경제 또한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과연 20세기를 지배했던 대량생산체제는 끝이 난 것일까.

미국경제는 다시 살아날수 없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최근 미국의 경제적인 딜레마를 경제사적인 관점을 통해 파악한
"풍요의 종말"(제프리 매드릭저 랜덤하우스간 원제: THE END OF AFFLUENCE)
이 출간돼 화제를 낳고 있다.

"미국경제 딜레마의 인과관계"라는 부제를 단 이책은 미국의 부를 이끌어
왔던 요인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남북전쟁이후 73년까지 미국경제는 지속적으로 평균 3.4%의 성장을
이룩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73년이후 22년간 연간성장률은 2.3%에 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자와 무역수지적자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이러한 침체의 요인으로 대량생산체제의 쇠퇴를 꼽는다.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체제는 거의 무한대의 시장으로 간주
됐던 미국시장에 잘맞아 떨어졌다.

대량생산을 위해 필요한 거대한 자원과 이를 소화할 충분한 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에 걸맞게 대단위 투자가 이뤄졌으며 소비를 부채질, 과잉소비를
낳기도 했다.

대량생산체제는 또 다른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바뀌면서 미국이
구가하던 대량생산체제는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후 일본과 서유럽이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기 시작, 시장에 뛰어
들었다.

대량생산이 더이상 부를 낳지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를 조금씩 생산하는
다품종소량생산체제가 등장, 힘을 얻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등장 또한 다품종소량체제를 가속화시켰다.

금융서비스에서 의류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끔 다품종소량체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기업들은 이 체제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시스템은 대량생산체제에 비해 투자효과가 높지 않아 미국기업들이
꺼린다는 것.

노동자들도 소량생산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으며 그 결과 미국기업은 세계시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자는 따라서 미국의 경우 하루빨리 대량생산의 환상을 벗어던지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오춘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