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전시를 알리는 각종 기념탑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고 비엔날레
엠블럼이 새겨진 깃발들도 가을햇살아래 나부끼고 있다.
전시장은 "소문난 잔치"를 보려고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중절모를 눌러 쓴 할아버지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골 아낙의
모습도 눈에 띈다.
15년전의 어두웠던 기억을 뒤로한채 이젠 당당히 국제비엔날레를
개최한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된 광주시민들에게 이번 비엔날레는
분명 의미있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13개월이라는 짧은 준비기간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렇더라도 이번 비엔날레가 갖는 의미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간 세계미술의 변두리로 치부되어온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등 제3세계
작가들을 대거 참여시킴으로서 제3세계 미술이 세계 미술흐름의 주요한
가닥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대목으로 꼽힌다.
또 기성작가를 최대한 배제하고 20~30대 작가군에 문호를 개방,
신선감과 활력을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국제비엔날레와 차별화를 꾀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시장에 들어서본 사람이라면
이번 행사가 명실상부한 국제비엔날레로 자리매김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경계"가 많음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작품의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행사가 과연 운영의 묘를 제대로
살렸는가 하는 점에선 적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본전시인 "국제현대미술전"과 특별전인 "한국근대미술속의 한국성전"이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아트홀의 경우 작품을 일정한 기준없이 마구잡이식
으로 배열한데다 작품의 크기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채 전시공간을
획일적으로 배당함으로써 혼란스런 모습을 부여준다.
게다가 전시장 내부엔 작품을 소개하는 변변한 안내패널도 없다.
출품작의 상당수가 설치 비디오등 난해한 현대미술품임을 감안할 때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작품들을 수용, 관람객과 작품간의 교감
또한 상당부분 제약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근대미술속의 한국성전"이 좋은 기획의도에도 불구,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보예술전"을 비롯한 다른 특별전과 기념전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조용히 빛을 발하는 전시회가 하나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근대회화명품전"이 바로 그것.
조선말기에서 격동의 구한말에 이르는 시기 한국회화사를 수놓은
거장 46인의 가작 91점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각축장"에서 혼란스러워진 관객들에게 모처럼 차분하고 은은한 느낌과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할 것이다.
< 정석범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