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기도 하남시 엘칸토 공장에선 이색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한 켤레의 구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생산관리팀은 품질에 하자가 없는 만큼 즉시 상품화하자고 주장했다.

디자인팀은 이에 대해 품질은 괜찮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는 디자인이기 때문에 "불량제품"이라고 맞섰다.

2시간여에 걸친 공방의 결과는 디자인팀의 판정승.품질상 아무 문제가
없는 멀쩡한 구두가 불량품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 공장은 사소한 문제라도 이처럼 토론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토론활성화에는 엘칸토가 신바람나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신바람 분임조"가 큰 기여를 했다.

이 공장이 분임조활동을 도입케 된 이유는 구두라는 제품의 특성상 일반
공산품과 달리 사람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하나의 구두를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공정수는 줄잡아
1백가지나 된다.

불량제품이 나오면 현장 근로자외에는 원인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공정을 잘아는 현장근로자끼리 토론을 통해 불량요인을 "원천봉쇄"하자는
게 분임조활동의 목표다.

"분임조는 우리공장의 모세혈관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생산라인의
문제점을 찾아낸 뒤 토론을 통해 이를 개선해 공장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정주권 생산관리팀장).

현재 이 공장의 분임조수는 총 38개. 각 조는 각 부서의 과장을 포함해
평균 8~10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원들은 직위에 관계없이 각자가 느낀 문제점들에 대해 격의없이 토론을
한다.

매수요일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이지만 필요할 때는 수시로 만남을 갖는다.

지난해 9월 생산2과 "사랑"분임조는 회사에 다기능습득을 위한 OJT교육
도입을 요구했다.

각 공정의 담당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결근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를
대신해 제품제조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부전공"인 셈이다.

회사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분임조원들은 "1인 2기습득"을 목표로 3단계에 걸친 OJT교육을 받았다.

"자발적"인 교육은 자연스레 생산성향상으로 이어졌다.

12월에 3단계 교육이 끝날 무렵 분임조원들의 작업성취도는 90%수준까지
껑충 뛰었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각 분임조가 작업현장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지적한
건수는 총 1천6백39건. 이를 개선해 거둔 직접적인 비용절감 효과만 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작은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해냈다는 분임조원들의
자신감이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을 시도함으로써 조원들간에 저절로
일체감이 형성됐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 생긴 자신감이야말로 분임조 활동의 가장 큰
수확이다"(조종만 품질개발팀장) 분임조 활동을 뒷받침하는 것은 태스크
포스팀.

분임조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는 게 태스크 포스팀의
역할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 이 팀이 완성한 "목형표준화"다.

표준화가 안돼 구두 뒷손질때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는 분임조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를 완성한 것. 여러사람의 발크기를 확인키 위해 전임직원의
발지문을 찍기도 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분임조. 이를 적극 지원해 분임조
활동을 꽃피우게 하는 태스크 포스팀.

엘칸토 공장의 신생산혁명을 이끌고 있는 두 축이다.

"내가 만드는 제품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한 분임조원의
자신감속에서 "신발은 사양산업"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재창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