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무자료시장인 영등포 조광시장.

한때 통조림과 잡화 등의 도매상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이시장에선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2년만에 30%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상인들이 떠난 자리엔 부가세를 물지 않는 건어물점이나 식당같은
유흥업소가 대신 들어섰다.

음료나 주류의 무자료거래로 악명높던 청량리시장도 예외는아니다.

"전업이라도 할 수 있는 상인들은 그나마 행운이다.

실명제이후 장사가 안돼 문을 닫으려해도 대안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있다"
는게 한 상인의 푸념이다.

금융실명제가 국내 경제의 암적 요소로까지 지목되던 무자료시장에 일대
찬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청량리시장과 인접한 슈퍼마켓연합회 서울중동부조합의 장용문상무는
"공산품의 경우 무자료거래가 2년전보다 1/3가량으로 줄어들었다"며 "아직
까지 남아있는 일부 부정한 거래도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낙관했다.

거래마다 반드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 실명제가 상인들의 납세의식
을 높인 것도 큰 성과다.

장안동에서 슈퍼를 경영하고 있는 서성호씨는 "무자료상품을 못쓰면 경영
에 어려운 점이 많지만 계속 삥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상적인
상품을 갖다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무자료시장을 완전히 몰아냈지는 못했다는게 전문가
들의 지적이다.

무자료시장의 위축은 실명제 자체보다는 국세청의 계속된 단속강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심의 무자료상들이 성남이나 의정부 등 서울외곽으로 빠져나가 여전히
검은 거래를 계속하고 있으며 관청의 단속을 피해 은밀하게 소매상에 덤핑
물건을 배달해주는 중상(일명 나카마)들의 암약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는게
그 예다.

또 메이커와 도매상간의 검은 거래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도매상과
소매상간의 무자료거래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만원이하의 거래는 국세청이 사실상 추적하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
매출이나 매입계산서를 소액으로 쪼개 분산처리하는 허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조광시장의 경우 도매상과 소매상간에 서로 세금계산서를
가져가라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유통전문가들은 금융실명제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려면 현재 10%인
부가가치세율의 인하 등 세제개편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과세특례자를 일반과세자로 전환시키는 대신 세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세금 다 내고 장사하면 망한다"는 상인들의 왜곡된 납세의식을 고치고
검은 거래의 근절을 위해선 "불법은 막되 숨통은 틔여주는" 탄력적인 세정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영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