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N골프장에 갔었는데, 3홀을 지나자 등반 플레이어의
캐다가 "이름은 들어본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래서 필자는 "아니, 이곳 전무님께서는 내가 이 골프장 캐디들에게
최고 인기라고 말씀하시던데, 아가씨가 나를 모르는 것을 보니 그건
거짓말이었군"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필자의 캐디가 다짜고짜 말을 받았다.

"아니에요. 변호사님, 우리 골프장의 캐디들 사이에서 변호사님은
"날개없는 천사"라고 소문이 났는데요"라고 하면서 자기네 골프장
전무님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라고 했다.

필자는 주위사람들로부터 성질이 못돼 깡마른데다 목소리마저 터무니
없이 커서 도대체 멋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오고 있다.

또한 스스로도 딱딱하고 무뚝뚝하여 좀체로 남의 호감을 사기는
곤란한 사람이라고 여겨오던 터인데, "날개없는 천사"라는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우선 골프를 잘 해서 캐디들이 볼찾으러 헤메지 않게 해준다.

언제나 디 느를 메꾸고 그린에 올라서도 볼마크를 리페어해주기
때문에 편안하다.

더우기 오르막 홀에서는 카트까지 끌어주어 감사하다.

그리고 라운드하는 동안 필요없는 말도 잘 하지 않아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날개없는 천사"에 대한 찬사와 이유를 듣고보니 참으로 단순하고
하찮은 것이었다.

마음씨가 착하고 인격이 고배해서가 아니라, 골프룰을 따라 라운드
하고 어찌나 힘들게 카트끄는 것이 안타까워 끌어준다고 "날개없는 천사"
라는 극찬이라니.

필자는 1984년 11월 어느날 여주컨트리클럽에서 소위 머리를 올렸다.

여주골프장의 전반나인 그늘집 앞 홀은 몹시 오르막이었다.

그래서 골프백을 짊어진 캐디들은 하나같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때 동반한 장인어른께 서 당신캐디의 백에서 아이언 너댓개를
빼어들고 필자에게 다가와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아이언 서너개를 집어들고 그린까지 가는데에는 별로 힘이
들지 않을 것일세.

그렇지만 자네가 들어다주는 아이언 서너개 덕택에 아가씨의 캐디백은
아주 가벼워져서 자네는 자네의 캐디로부터 최상의 조언을 받게될 것이네"
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그때이후로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고 더나아가 골프장의 잔디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어 그린위의 볼마크를 리페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잔디보수기는 몇해전 이런 필자를
"기특하게" 여긴 한성골프장의 캐디가 필자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것을
물려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