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씨는 이제 더이상 가난해질래야 가난해질 것도 없다.

지난 1년2개월간의 실업자생활로 완전히 무일푼이 됐다.

부인과 함께 사는 서울 용두동 단칸방의 사글세를 못낸지도 3개월째. 끼니
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그는 일평산업이 부도를 내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관리부장으로 채무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까지 날렸다.

이력서를 80장여장이나 냈지만 번번이 허탕만 쳤다.

40대의 실업자를 받아줄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실업자에서 탈출할 생각에 골몰했다.

"아,도대체 뭘해야 먹고 살수 있을까" 취직보다는 장사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매일 한숨과 함께 내뱉는 넋두리는한결같았다.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하지" 결국 자포자기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시골
친구가 그의 단칸방으로 찾아왔다.

친구는 그에게 "건강기기를 떼다 팔면 밥은 먹고 살수 있다"는 조언을
던지고 갔다.

그동안 관리업무만 해본 그는 과연 자신이 세일즈를 할 수 있을까 망설여
졌다.

그러나 이제 체면을 차릴 처지는 아니라는 결심을 했다.

92년 2월 그는 드디어 실업자생활을 청산했다.

첫출근날 그의 복장은 신사복이 아니었다.

잠바차림에 에깨엔 헬스의자를 잔뜩 맨 모습이었다.

그는 백화점앞에서 건강기기들을 팔았다.

다시는 실업자가 될 수없다는 각오로 악착같이 팔았다.

그가 선정한 장소는 항상 적중했다.

많이 팔리는 날일 수록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을까"

주식회사 케이투와 판매계약을 맺은 그는 세일즈를 시작한지 3개월만에
2천만원을 벌었다.

이 돈을 모두 털어넣어 마포 서울가든호텔 뒤 근신빌딩에 16평짜리 사무실
을 차렸다.

회사명은 현대그린.

맨손으로 석달만에 사장이 된것이다.

이사장은 현재 대형백화점에 20개 매장과 2개의 건강기기제조업체를거느린
기업인이 됐다.

건설용 중장비및 특장차업체인 수산중공업의 박주탁사장도 한때는 실업자
였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상영산업이란 무역업체에 근무했으나 경영악화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가진 돈이 없는 그는 밑천없이 할 수 있는일을 찾아 나섰다.

1달이상 청계천상가를 헤맸다.

이곳에서 우연히 공구상을 하고 있는 고향친구를 만났다.

다방에 들어가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친구는 "좋은 대학을 나와 무슨 장사냐"며 의아해했다.

그후에도 서너번을 더만났다.

그제서야 친구는 "공구를 좀 수입해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이때무릎을 쳤다.

"그렇지.공구수입을 대행해주는 일은 큰 밑천이 들게 없지" 공구오퍼업을
위한 투자는 공구점옆에 책상을 하나 놓으면 충분했다.

박사장은 일본및 독일등에서 베어링과 공구를 수입, 청계천일대에 공급
했다.

에상외로 잘팔렸다.

40~60%의 이익을 봤다.

2달뒤 이돈으로 차린 기업이 수산무역상사.수산이란 이름은 박사장의
고향지명을 따서 붙였다.

이 기업은 수산중공업 수산특장 수산정밀등 6개사로 뻗어나가 종업원
1천4백명에 올매출 2천5백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사장이나 박사장처럼 돈을 들이지 않고 몸으로 떼우거나 노하우로 시작
하는 용역관련창업은 수없이 많다.

세일즈전문업체 오퍼 소프트웨어개발 플랜트설치업 공장재배치업 컨설팅
분양대행 등 다양하다.

건설기술자들을 계약사원으로 채용, 건설인력전문 공급업체를 만든 제일
컨설팅의 이강무사장, 경리사원이 필요없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이스턴
엔지니어링의 서원교사장, 건물분양 전문대행업체를 차린 유문개발의 문병권
사장 등이 용역관련창업으로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물론이 방법외에도 큰 밑천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은 줄잡아 10여가지
에 이른다.

허광호삼진전자사장은 먼저 적자기업 또는 도산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플라스틱사출부품을 만드는 업체를 인수해 1년만에흑자업체로 바꿔놓은
그는 도산기업을 인수하면 빠르면 6개월안에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대자동차의 엔진하우스를 생산하는 세원의 김문기사장도 태광에 근무
하다 적자기업을 인수, 중견기업인으로 부상한 케이스다.

그는 1년여만에 인수기업을 흑자로 전환하고 현대자동차의 각종승용차
핵심부품업체가됐다.

대구 성서와 경북 영천에 거대한 자동차부품 공장을 두고 있다.

김사장은 지금도 20평 아파트에 산다.

창업초기의 각오를잊지 않기위해서다.

서기석크라운금속사장,이강학구미금속사장등도 빚더미기업을 맨손으로
인수, 정상화시킨 기업인이다.

레이저금속가공업체인 이동팔대광금속사장은 돈없는 사람이 기업을 시작
할 수있는 방법으론 "첫째 퇴직금 활용, 둘째 집을 줄이거나 전세로 옮기는
방법, 세째 창업인큐베이터를 이용하는 법, 네째 친인척회사에 입사해 지사장
또는 대리점을 맡아 독립하는 방법, 다섯째 학연 지연등을 동원해 대기업및
공기업의 납품권을 따내는 방법, 여섯째 중진공창업승인을 받는 법 등이
있다"고 밝힌다.

이사장은 "그러나 결코 친인척의 돈을 끌어들여 창업을 하지말것"을 당부
한다.

사채이자로 금융비용을 견딜 수 없는데다 기업이 적자를 내기 시작하면
말못할 만큼의 참담한 대접과 돌이킬 수 없는 파산만 남게 된다"고 경고한다.

<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