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승부사''.

제일투자금융 콜중개실에서 일하는 콜딜러 정찬주대리(31)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부른다.

정대리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씩
하루 6천억-7천억원 콜자금의 금융기관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오후5시반 제일투금 1층 콜중개실.

"여기 2백개(2백억원)주시고. 알았어요 그쪽에 5백개(5백억원)넘길께요".

전화 수화기 2대를 한꺼번에 잡고 거래 금융기관을 연결해주는 정대리에겐
숨쉴 순간도 없어 보인다.

"금융기관간의 과부족자금을 중개해주는 콜중개실은 금융기관들에겐
"돈 응급실"이지요. 그래서 콜딜러들은 응급구조사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금부및 전산실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6월부터 콜딜러로 일해온 정대리는
"콜딜러들은 오후 6시 마감시간이 지나면 기가 빠질 정도로 파김치가
돼기때문에 뛰어난 순발력과 함께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직종"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자금사정이 좋으면 일하기가 비교적 쉬우나 시중이 돈이 빡빡할
때면 없는 돈을 끌어다 수혈해주느라 피가 바싹 마른다고 정대리는
털어놨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과후 직원들과 술자리를 자주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체력이 밑천"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엔 집근처 서울
뚝섬 한강시민공원에 나가 조기축구로 체력을 다진다고.

정대리는 아침 9시 회사에 출근하면 자금동향을 분석한 뒤 금융기관과
정보를 교환, 당일의 금리및 시황을 미리 머리 속에 입력해둔다.

그래야 오후 2-3시부터 펼쳐지는 콜전쟁에서 과감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직업은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인 것같습니다. 아무리
데이타베이스가 잘돼있더라도 찰나의 판단은 사람이 해야하니까요"

요즘은 한국은행의 금융결제 전산망(BOK WIRE)가 깔려있어 콜중개업무가
한층 수월해줬다고 정대리는 설명했다.

하지만 정대리는 최근에 일어난 인천투자금융과 충북상호신용금고의
콜거래 관련 금융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콜딜러들이 힘들게 응급헌혈액을 구해줬는데 이 피가 환자한테 가지
않고 엉뚱한 데로 새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정대리는 일련의 콜거래 사고는 엉성한 콜거래 시스템과 관리허술에서
빚어졌다고 본다며 은행간 직거래와 투금사를 통한 시스템으로 나눠져
있는 콜거래 제도를 일원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창 일할 때는 목이 말라도 물 마실 시간도 없어 옆에서 보조직원이
대신 생수를 따라준다고 말하는 정대리.

모두들 일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업무가 워낙 힘들어 근무를 꺼리는
콜중개실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보기드문 신세대 금융인이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