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업계의 세계 메이저들이 한국에 유통망을 구축한다. 모빌 엑슨 BP
같은 메이저들의 휘발유와 경유가 쏟아져 들어온다. 이들 메이저는 튼튼한
자금력을 바탕으로한 가격파괴를 무기로 국내 정유업계와 일대 시장쟁탈전을
벌일지도 모른다.

국내 정유5사도 한국시장의 수요량을 웃도는 공급초과분을 소화시키기 위해
이웃 일본이나 동남아 시장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작년말현재 7,300개인
전국의 주유소수가 1만개를 돌파하면서 치밀한 영업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소매시장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 기다린다. 신규정유회사 참여로 6~7사
로 늘어날 수도 있다"

정유업계 사람들이라면 이 시나리오를 그리 과장된 전망으로 보지 않는다.

빠르면 2~3년안에, 늦어도 2000년대초엔 이 시나리오에 그려진 것과 같은
급변한 영업환경을 맞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게 정유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에너지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통제와 규제속에서 경쟁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었던 정유업계에 "격동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정유업계에 격동기를 예고하는 요인은 석유산업의 자유화와 개방화이다.

정부당국자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유가자유화 개방화를 암시하는 석유사업법
개정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이 호텔롯데에서 가진 에너지 자원
업계대표와의 조찬간담회에서 정제업에 대한 허가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업계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석유사업법개정에대해 너무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적용시기에 더 관심이 있다.

이에대해 정부측에서도 적용시기를 명확하게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업계의 관측만 난무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쨌든 시기가 문제일뿐 <>새로운 업체의 정유회사진출이 허용되고 <>외국
메이저들이 한국에 직접 정유공장을 세우거나 판매기지를 구축하고 <>일정
요건만 갖추면 작은 기업이라도 석유제품을 수입판매할 수 있으며 <>정유
회사마다 휘발유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수도 있는 완전한 가격자유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격동기를 앞두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는 주유소 쟁탈전같은 소모적인
"내전"은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정유회사들이 외상매출금등으로 깔아 놓은 유통자금은 4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유통시장 자금을 시설 고도화등으로 용도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정유업계는 지난해 치열한 주유소쟁탈전을 벌였으나 금년들어서는
이같은 소모전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고무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통시장 전쟁이 재연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 정유회사들은 외국의 메이저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유업자들은 석유제품의 유통마진이 너무 박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휘발유의 경우 일본에서는 마진이 16%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9~10%
정도에 불과함으로써 내부기업자금 조성이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의 석유류제품 가격정책이 그동안 세수와 물가에 초점을 맞춰 이뤄져
왔지만 정유업체의 재무구조개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류시설의 확충도 시급하다.

지난달 21일 온산~서울및 여천~서울구간을 연결하는 남북송유관이 완공
됐지만 저유소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정유회사들은 저유소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땅값으로 부지확보가 쉽지
않은 가운데 그나마 기존 저유소에대한 지역주민의 이전요구마저 간헐적으로
터져나와 애를 먹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외국 메이저들이 상륙한다면 물류에서의 경쟁력이 국내
업계의 "무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도입단가나 석유정제비용은 메이저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물류망을
어떻게 탄탄히 구축하느냐에 따라 시장점유율 고수여부가 판가름난다는
설명이다.

정유업계에 다가오는 격동기는 30년의 한국 정유산업 역사상 가장 거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격동기는 국내 정유산업이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영효율성을
높이면서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