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이냐, 휴식처냐"

불과 몇년전만 해도 은행계열 증권사 사장자리를 빗대어 나온 말이었다.

은행에서 잘나가던 분들의 마지막 거처이기도 하거니와 잠시 쉬면서 잘만
버티면 은행장자리도 넘볼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은행계열의 7개 증권사의 최고사령탑은 한결같이 모은행출신.

"낙하산인사"라는 통과의례의 낙인도 찍혀야 했다.

다들 간접금융을 대변하는 온실과도 같은 1금융권(은행)에서 척박하디
척박한 직접금융의 산실(증권)로 옮겨온 사장들이다.

이같은 환경변화에 따른 이들의 운신폭이 좁다는 것은 증권감독원에서
매년 내놓는 경영평가에서 중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3월말로 끝난 94회계년도중 은행계열7사중 1개사만 A등급을 받았을뿐
나머지는 모두 B등급에 그쳤다.

그것도 절대평가가 아닌 엄연한 상대평가의 결과였다.

그래도 은행에서 전무나 상무까지 지낸 이들에겐 대체로 영업맨으로서의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걸맞는 발군의 추진력도 담고 있다.

한일증권의 장기팔사장(59).

한일은행 전무출신인 장신임사장은 첫근무일인 지난달29일부터 당장 업무
파악에 나섰다.

그것도 "임원회의실"이 아닌 "부서회의실"을 돌며 대리급이상의 일선
실무자까지 배석시켰다.

현장중심의 영업을 강조하는 한단면이다.

조흥증권의 백승조사장(61)과 보람증권의 정규복사장(53)은 올해 주총에서
연임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조흥은행 상무출신인 백사장 역시 추진력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증자때의 일이다.

한성투금에서 증권으로 전환해 모은행 임원들을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끝내 성사시켰다.

선이 굵다는 인상을 받는다.

또 평소 약주도 잘않는다는 정사장은 드러나지 않는 성격이지만 최근들어
부쩍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름하여 "새보람 창조운동".

그동안 웬만하면 연임이 관례였던 임원인사에서도 본부장제를 도입해 올해
부터는 1년단위로 평가한다는 잣대를 제시했다.

직원들에게도 "목표에 의한 관리"를 골자로한 신인사고과제도를 받아들인
신상필벌의 원칙주의자이다.

모은행에서 전무를 지낸 신한증권의 신현석사장(57)은 이미 지난해5월
연임한 경영자.

본사와 지점의 영업부문에 대해선 과감히 지원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라면
신조다.

매월초에 열리는 전국 지점장회의에서도 제도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그자리
에서 당국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다.

신한은행전무로 지내기까지 정통 영업맨으로 통했다.

지난해 제일은행 계열로 넘어간 일은증권의 이주찬사장(59).

제일은행에서 감사까지 지냈지만 정도내 공격적인 영업을 강조하면서
"내실"보다는 "외형"성장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모은행인 장은의 행장으로 유력한 물망에 올랐던 박창수장은증권사장
(55).

철도고출신으로 장은에서 감사까지 지낸 자수성가파로 통한다.

진취적인 성격으로 인사고과에 수익률과 예탁자산증가율을 넣고 약정부문을
삭제하기도 했다.

집에 팩시밀리를 두어 직소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용객도 꽤 많다는
지적이다.

한켠엔 조용한 스타일이지만 산은부총재시절의 일로 법정에 서야만 했던
홍대식산업증권사장(61)도 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를 노인정으로 만들지 않고 차츰 노익장
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손희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