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연출의 귀재" "충무로의 이단자" "여성영화의 명장".

영화입문 20년째를 맞는 박철수 감독(47)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의 닉네임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됐다.

올해초 제2의 영화인생을 선언하며 독립프로덕션 박철수필름을 설립한
그는 창립작품 "301.302"를 내놓으며 또한번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개봉된 이 작품은 영화의 참맛을 아는 매니아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27일부터 뤼미에르극장 등에서 확대 개봉된다.

또 미국LA와 뉴욕 일본 프랑스 호주 말레이시아 등 외국배급사들의
수입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301.302"를 통해 비로소 "눈치보는 영화"가 아닌 "내영화"를 만들수
있었죠.

관객들의 작품선별력이 크게 향상됐고 수용태세도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배고프던 시절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지만 지금은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먹는 시대잖아요.

선진국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영화팬이 늘어나는 만큼 기대가 큽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쉬운 구석은 많다고.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장르개발과 실험적인 작업을 할수 있는 것이
독립영화의 장점입니다.

배급시스템도 이에 맞게 차별화돼야죠.

관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 시킬수 있도록 극장별로 뚜렷한 특색을
가져야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산문보다 시에 가깝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영감도 시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80~89년 방송 PD로 있으면서 연출한 작품들은 대부분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죠.

그러다보니 소설의 시녀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감독이 이야기꾼이라면 관객은 구경꾼이죠.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이미지중심의 "보여주기"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컬트영화로 불리는 "301.302"도 그래서 애착을 가지죠.

발상은 장정일의 시에서 따왔습니다"

지금 그는 황지우의 시 "여정"에서 이미지를 빌려온 작품
"학생부군신위"와 에밀레종을 소재로 한 "아밀라"를 준비중이다.

75년 영화판에 뛰어든 그는 "어미" "안개기둥" "오세암"
"우리시대의 사랑" 등 16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생인손"
"여자의 남자" 등 20여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는 여성들의 얘기를 많이 만든게 사실이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삶의 무게가 실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라는 설명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