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는 것을 소프트랜딩(연착륙)이라 한다.

경제에서는 과열경기가 진정되면서도 침체국면에 빠지진 않고 적당히
안정되는 것을 소프트랜딩이라 부른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이상이기도 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연준리(FRB)의 소프트랜딩 시도가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
전망이 분분하다.

지난해 2월 FRB가 적기에 긴축에 나섰기 때문에 소프트랜딩을 기대할만하다
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달러 하락과 유가상승이 소프트랜딩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여섯차례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적정 성장률을 2.5%로 잡고 있는데 비춰보면 이는 매우 높은 수준
이다.

특히 4.4분기에는 성장률이 5.1%에 달했다.

경험적으로 적정선을 넘어선 고성장은 결국 "초과수요 물가급등 경기침체"
의 경로를 밟게 된다.

FRB는 이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2월4일 단기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착수했다.

당시 미국 산업계는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금리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만을 제기했으며 의회는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을
불러내 금리인상에 대해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고성장세를 지속하자 금리인상을 반대했던 이들도
FRB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됐다.

금리인상이 시작된지 1년쯤 지나면서 경기둔화를 알리는 경제지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금리가 오르자 건설경기와 내구재 소비가 위축되고 재고가 증가하기 시작
했다.

내구재 주문의 경우 지난 2월 0.8% 감소한데 이어 3월에도 0.3% 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28일 발표될 예정인 1.4분기 경제성장률 역시 지난해 4.4분기의 5.1%
보다 현저히 낮은 2.8~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가 이 정도 둔화되는 것만을 놓고 보면 소프트랜딩을 기대할만 하다.

자넷 옐렌 FRB이사는 최근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경제가 소프트랜딩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올들어 미국 증시가 활황을 지속한 것도 소프트랜딩을 믿는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경제가 안정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 24일 4천3백포인트를 돌파했으며 채권시장
에서는 강세가 지속돼 30년 만기 재무부채권의 경우 시세와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이 지난해 11월에 비해 0.8%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소프트랜딩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금리상승으로 경기가 급격히 침체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달러
하락이 수입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1.4분기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2.8~3% 가운데 재고증가분을
빼면 성장률이 훨씬 낮아진다고 지적하면서 재고조정이 본격화되는 2.4분기
에는 성장률이 침체를 우려할 만큼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9일자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2.4분기 경제
성장률이 1.5%를 밑돌 수 있다고 보도했다.

테크니컬데이타사의 수석연구원인 낸시 키멜먼은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FRB가 금리를 인상할 경우 금년말께 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엔화.마르크화에 대해 10~20% 떨어져 수입품의
가격상승에 따른 수입인플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최근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배럴당 20달러선을 넘어서는 등 유가가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그린스펀의 선임자인 폴 볼커는 80년대초 긴축시점을 늦게 잡는 바람에
소프트랜딩에 실패했으며 그린스펀 자신도 90년대초 시점을 놓쳐
소프트랜딩에 실패한 바 있다.

그린스펀은 이번에는 긴축시점을 제대로 포착, 소프트랜딩을 꿈꾸고 있다.

문제는 달러 하락.유가 상승과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소프트랜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