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과묵하다.

푸른 물굽이와 갈매기의 울음소리에도 별 대답이 없다.

그러나 뱃사람들은 바다와 대화하는 방법을 안다.

그들에게 바다는 뭍과 같은 삶터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바다의 대화.

늘 열려있으므로써 모든 사람의 희망과 고통을 감싸안을줄 아는 바다는
그래서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뱃꾼들의 애환과 함께 살아 숨쉰다.

이러한 작품들을 한데 모은 "한국해양문학선집"(전8권.한국경제신문사간)이
국내 처음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학평론가 최영호씨(36.해사교수)가 펴낸 이 선집에는 1908-1994년까지의
한국현대소설중 50여명의 중.단편 65편(6권)과 15명의 논픽션(2권)이 실려
있다.

신채호의 "이순신전"에서부터 지난해 발표된 한승원씨의 "새끼무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주제별로 정리됐다.

제1,2권은 뱃사람들의 소금기 배인 삶과 역사의 상흔을 다룬 얘기.

선원들의 좌절당한 꿈을 그린 천금성씨의 "바다의 끝"을 비롯, 갑판폭력을
고발한 "먹이사슬"(원명희), "만선가"(엄창석), "북태평양"(이상민)등이
들어 있다.

일본으로 밀항하던 사람들이 대거 수장되는 김원일씨의 "앓는 바다"와
48년 독도에서 미군비행기에 의해 피격된 어부들을 소재로 한 전광용씨의
"해도초", 60년대 개발붐의 허상을 묘사한 이문구씨의 "해벽", 문순태씨의
"안개섬"등도 눈길을 끈다.

제3,4권은 어촌과 섬사람들의 애환을 조명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며
제5권과 6권에는 해녀, 잠수부, 창녀등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논픽션모음집인 제7,8권은 최씨가 숭실대교수인 조규익씨와 공동으로 엮은
것.

정재계 유명인사도 등장한다.

김재철동원산업회장이 60년대 원양어선 선장으로 남태평양에 출항해 기록한
일지와 김원기민주당최고위원이 겪은 북양어선단 해난기, 무역선과 오징어
잡이 선원들의 체험, 해상표류기 등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최영호씨는 "해양문학이라면 "백경" "노인과 바다"등 서양의 소설을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장한철의 "표해록"등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고 소개
하고 "그동안 육지의 관점으로만 보아왔기 때문에 소외됐던 바다의 "제몫
찾기"작업이 새롭게 시도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족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터인
바다를 더이상 관념적이고 주변적인 영역으로 밀쳐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선집은 우리문학의 공간과 역사인식의 폭을 확대시키는 것 이외에
세계무대를 향한 미래 해양국가전략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큰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