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의 신화는 이병철회장이 지난 83년 사업참여를 선언하며
본격화됐다.

그러나 그 10년전쯤인 지난 74년 12월 초.

"아버님,그 건은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해보겠습니다"

이건희 당시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현그룹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이렇게 졸랐다.

여기서 말하는 "그 건"이란 국내 최초의 웨이퍼 가공업체인 한국반도체
부천 공장 인수건.

이건희이사는 당시 반도체사업진출이 필요하다며 부친에게 미 캠코사가
운영하고 있던 부천 공장을 인수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신중한 이회장은 선뜻 단안을 내리지 못했다.

확신을 갖고 있던 이이사가 "그렇다면 제가 직접 해보겠다"고 나선 것.

그로부터 며칠 후 이건희회장은 개인명의로 한국반도체를 사들였다.

이 곳이 삼성반도체의 정신적 "메카"로 불리는 지금의 삼성전자 부천
반도체공장이다.

그러니까 반도체에 먼저 손을 댄 사람은 이건희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반도체의 "원조"를 굳이 따지자면 이병철회장이 아니라 이건희회장
이라는 말이다.

그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한 한국의 "실리콘매니아"
1호인 셈이다.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삼성 이회장 부자메 못지 않게 반도체에 일찍
눈뜬다.

그는 79년말부터 "반도체를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주위에 하기시작했다고
한다.

"액션"은 삼성 이회장에게 한 발 뒤졌지만.

반도체 사업진출 결심을 굳히고 미국 실리콘 밸리를 직접 찾기 시작한 것은
82년 초부터다.

장남 정몽필 당시 인천제철사장의 교통사고 사망소식도 미국에서
반도체사업구상을 하다가 들었다.

그의 5남인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도 이에 못지 않은 실리콘 매니아다.

반도체에 관한 한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전문지식이 많다.

반도체 사업에 대한 열정도 강하다.

92년 대선전 비자금 관련으로 옥고를 치를 때도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반도체뿐이었다.

영어의 몸으로 16메가D램 투자계획을 확정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도 실리콘 매니아란 칭호가 돌아갈 뻔한 적이
있었다.

지난 76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미공단을 시찰할 때였다.

금성사(현LG전자)에 들른 박대통령은 안내를 맡았던 박승찬 당시 사장에게
반도체사업을 해보라고 말을 건넨 것.

박대통령은 큰 딸 박근혜씨로부터 반도체 사업의 중요성을 들었던 터였다.

이 말을 들은 구회장은 자금문제 때문에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가전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박대통령에게 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자경회장이 들을 뻔한 실리콘 매니아란 칭호를 대신 얻은 사람은 구자학
LG반도체 회장이다.

그는 통신기기를 주로 생산하던 금성반도체에서 반도체부문을 떼내 지난
89년 금성일렉트론(현LG반도체)으로 독립시킨 장본인이다.

그룹내의 몇 안되는 반도체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 도입기엔 "오너"들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꽃을 피워낸 사람들은 엔지니어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들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형성되기 시작한 "반도체 군단"이 그 주역들이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의 "삼성-스탠포드학파"와 현대전자의 "벨사단".

"삼성 -스탠포드 학파"의 선봉장은 미국 스탠포드대학 박사출신의
진대제전무다.

그는 지난 85년 연봉 백지위임등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만류하는 IBM사장
에게 "일본을 이겨보기 위해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삼성에 합류했다.

그리고 4메가D램과 16메가D램 개발을 완성했다.

그는 현재 메모리반도체의 개발과 영업을 책임지고 1년중 절반은 해외에서
보내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진전무의 뒤를 이어 스탠포드대학 출신의 권오현이사와 황창규이사가
삼성군단에 등록했다.

이들은 각각 64메가D램과 2백56메가D램을 개발해냈다.

반도체극일의 신기원을 연 장본인들이다.

이에 비견되는 것이 현대의 "벨사단"이다.

오계환부사장을 정점으로 김세정 황인석 박흥섭 유회준상무등 미국 AT&T
벨연구소 출신들이 메모리반도체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오부사장은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대표이사의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1년 선배다.

공정기술에 관한 한 국내 1인자로 꼽힌다.

LG반도체는 이희국상무와 김창수LG전자 중앙연구소장(당시 안양연구소장)이
터를 닦았다.

이상무는 삼성 진대제전무와 경기고.서울대.스탠포드대 동기로 지난 86년
1메가롬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해 한국 반도체 업계에 "메가시대"를 열었다.

김소장은 지난 85년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인 CMOS(상보성금속산화막방식)
반도체를 개발한 사람.

그는 "당신이 그 기술을 6개월내에 개발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식사를
사겠소"라며 빈정댔던 미국 LSI로직사 코리건 회장으로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정말 근사한 식사대접을 받는 일화도 남겼다.

한국반도체산업 발전사는 이같은 실리콘 매니아들의 땀의 역사다.

이들은 한국 반도체 업계가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딛고 짧은 시일안에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영역이 상당부분 "D램"에만 머물러 있다는 건 극복돼야 할
한계다.

이제는 비메모리분야의 전문가들이 탄생해야할 차례다.

반도체라는 옥토에서 미래산업의 주도권이라는 과실을 따기 위해선 말이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