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에 집착하는 한국인-.

작년 9월 삼성전자가 2백56메가 D램 개발직후 구한말태극기 광고를 게재
하자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이렇게 꼬집었다.

삼성의 이 제품은 시제품 전단계 수준(working-die)으로 상업용 샘플에
못미치는 것인데 "세계최초"에 집착한 나머지 "자가발전"을 하고 있다는게
닛케이의 촌평이었다.

그러나 닛케이의 이런 보도는 삼성 광고가 나간 직후 일본 반도체회사들이
보인 "생리적 알레르기"를 대변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첨단 기술에서 세계 제1을 자부해온 일본이 "첨단"의 상징인 반도체D램에서
한국업체에 추월을 허용했으니 기분 좋을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결국 삼성은 "더이상 일본을 자극해서 좋을게 없다"며 구한말 태극기광고
게재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관한 한 반도체 기술개발과 "태극기"엔 묘하게 얽힌
인연이 많다.

일본 샤프사에 기술연수단을 보냈던 83년, 비슷한 시기에 미국 반도체업체
인 마이크론사는 삼성 미국법인측에 기술연수단 수용의사를 전하면서
"태극기를 걸어놓고 당신들을 반기겠다"고 했던 것.

그러나 삼성의 대미신사유람단을 맞이한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미국
기술자들의 냉랭한 대접일 뿐이었다.

삼성이 구한말 태극기광고를 게재한 데는 이런 기억도 작용했을 게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