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살리나스전대통령이 지난 1일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후보직
사퇴를 공식선언함에 따라 그동안 살리나스를 강력히 지지해온 클린턴
미행정부의 태도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살리나스의 퇴진으로 총장경선은 한국의 김철수통상대사와 이탈리아의
루지에로전무역장관의 2파전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미국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미정부는 재임중 경제실정으로 멕시코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에도
불구, 살리나스에 대한 지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누차 강조해왔지만
살리나스가 그의 형 라울 살리나스의 암살범죄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자
지지입장을 포기할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현재로선 미국이 제4의 후보를 옹립할지 김대사와 루지에로전장관중
한사람을 택일할지 장담할수 없다.

그러나 제4의 후보를 내세우는 방안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잇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조만간 김대사와 루지에로전장관 두후보중 미국에 유리한 인물을
선택할것이란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클린턴행정부은 살리나스의 사퇴선언이라는 돌발사태를 맞아 대응책을
논의중이나 아직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국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있는 김대사와 유럽연합(EU)의
이익을 대변할 루지에로전장관 어느쪽도 탐탁치않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우선 클린턴행정부는 김대사에 대한 지지여부를 놓고 크게 의견이 양분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정부내 친한 인사들은 아.태협력차원에서 처음부터 살리나스 대신
김대사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상당수 미관리들은 한국이 시장개방에 무성의할뿐 아니라 한국출신
총장이 과연 새로 출범한 WTO를 이끌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에 부정적인 미국의 일부 통상관리들은 한국이 비관세장벽을
교묘하게 구축해 놓았을뿐 아니라 쌀시장 개방을 완강히 거부하는등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에 걸림돌이었던 점까지 지적하며 김대사지지를
반대했다.

이러한 미국의 거부감에도 김대사의 초대 사무총장 선출 가능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우선 역대 가트사무총장이 유럽출신이었던 만큼 이번만은 비유럽출신이
WTO사무총장을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또한 살리나스를 지지했던 중남미개도국들의 경우 개도국과 선진국의
중재역할을 훌륭히 해낼수 있는 한국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 김대사의 중남미 순방시 멕시코를 비롯한 여러 중남미국가들이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후보와 루지에로후보를 놓고 손익계산을 하고있는 미국으로서는
개도국 입장을 대변할 사람보다는 선진국출신의 루지에로후보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입장에서 루지에로후보를 차선책으로 지지하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WTO사무총장선출이 다수결투표로 결정되기 보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 홍콩 호주등 일부국가들을 제외한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김후보를 전폭 지지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수 없기 때문이다.

살리나스카드가 무산되면서 운신의 폭이 대폭 줄어든 미국으로서는
대안부재의 현실에서 살리나스후보를 지지했던 중남미국가들의 움직임등을
예의 주시하며 거취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서명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