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속으로 노을지다"는 이현승감독이 "그대안의 블루"에 이어
2번째로 내놓은 페미니즘영화다.

채시라가 연기생활 10년만에 처음 스크린에 등장하고 문성근이
전라의 모습으로 출연한다고 해서 개봉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채시라는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이상민으로 분장, 일과 사랑에
적극적인 커리어우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녀는 영세출판사를 운영하다 실패하고 자취를 감춘 애인 김원
(김의성분)을 마음속에 간직한채 광고대행사에 입사한다.

차갑고 기계적인 CF감독 김규환(문성근분)을 만나 냉소적인 사회와
맞서는 힘을 체득하고 같은회사 여제작부장인 서지훤(양금석분)으로
부터 오기와 집념을 배우며 당당하게 성공한다.

일하는 여성이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우며 홀로서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기존의 페미니즘류와 별반 다를게 없지만 몇가지 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주인공의 홀로서기가 단선적이지 않다.

종래의 페미니즘영화가 직장내 남성중심의 권력구조에 과녁을 맞춘
것이라면 "네온속으로 노을지다"는 여성이 독자적으로 확보할수 있는
고유영역을 찾아냄으로써 소재나 공간을 확대하고 극전개도 대립보다는
상보적인 관계로 이끌고 있다.

또 "고독한 투쟁"을 강조하지 않고 여상사의 폭넓은 지지를 그대로
수용, 소영웅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남성 캐릭터를 다소 허무주의적으로 묘사, 흑백논리가
갖는 위험성을 비껴가는 노련함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지나친 의욕이 불러온 헛점은 여러군데서
눈에 띈다.

필연성이 결여된 아프리카행이라든지 막판 중역회의에서 서부장이
남자들을 상대로 훈계하듯 "연설"하는 장면, 분신자살하는 시위현장
등은 오히려 주제를 흐리고 있다.

(단성사/신영/동아/명보/그랑프리 등 개봉중)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