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이 20일 발표한 "중앙은행제도개선방안"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권은 재경원이 갖겠다는 것으로
요약할수있다.

금통위의장을 더이상 재경원장관이 맡지않도록 하고 9명의 금통위원중
3명을 상근으로 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수립의 최고의결기구인 금통위의
위상을 격상시켰다고 볼수있다.

재경원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던" 지금의 금통위에 비해선 외부입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할수있다.

그러나 은행감독기능을 한은에서 떼어내기로 한 대목은 정책수립과
감독의 일원화가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보장할수있는 장치라던 한은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정부는 은행감독기능을 떼어내면서 은행설립인가권도 현재의 금통위에서
정부로 귀속시키기로 했다.

게다가 금통위의장을 현재의 한은총재임명절차와 똑같이 재경원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토록 함으로써 한은이 바라던 한은총재의
격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임토록 한 재경원안은 한은을
집행기구로 전락시키겠다는 의도를 깔고있다는 지적를 받고 있다.

정책은 상위기구인 금통위에서 수립하고 한국은행은 이를 받아 시행하는
기능만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은등에서 "금통위의 기능강화라는 허울좋은 명분속에 한은은
껍데기만 남게됐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계의 한관계자는 "한은이 괜스레 독립얘기를 꺼냈다가 피할시간도
없이 폭탄을 맞게됐다"고 평가하기도했다.

그나마 재경원이 내건 금통위의 기능강화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금통위원의 구성에서 그같은 의문이 생긴다.

9명의 금통위원에 재경원차관이 포함되고 그외에 5명은 정부추천을
받도록 했다.

이들 6명을 뺀 3명만 금융기관에서 추천하게 돼있다.

결국 정부가 추천하는 위원이 3분의 2나 되는 셈이다.

그동안 사실상 유명무실했지만 금통위가 행사했던 예산승인권을
재경원장관에게 주어 정부로선 한은에 대한 새로운 견제장치까지도
확보했다.

이번 재경원안은 청와대는 물론 여당과도 협의를 마친것이다.

그러나 공개적인 여론수렴은 한차례도 없었다.

재경원은 20일 개회된 이번 임시국회에 개정안을 내기로 하는등
속전속결로 처리할 예정이나 의도대로 될지는 현재로선미지수다.

한은측이 재경원안에 반대하고 있고 야당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재경원안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약화시킨다"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경원안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소속교수들을 중심으로 한1천여명의교수들
이 최근 서명까지 한 한은독립안과도 정반대되는 것이어서 이들의
반대도 예상된다.

통화정책은 국민경제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번 한은법개정안이 또다시 해당기관의 밥그릇챙기기로 비쳐지지
않고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진정으로 보장할수있는 쪽으로 국회등에서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컨대 금통위가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을 받지않고 독립적으로 통화신용정책
을 수립할수있는 여건과 제도적 장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광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