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LG그룹회장은 공식 퇴임을 이틀앞둔 20일 한국경제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후임 회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선발된 전문경영인에 의한
철저한 자율경영을 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간추린다.

-"늙은 시어머니라도 곳간 열쇠는 계속 갖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정정하신데 퇴임을 결심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지난 88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영혁신을 추진한 이래 지금까지 7년동안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왔고, 그것으로
저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젊은 사람에게 혁신의 꽃을 피우는 일을
맡겨야겠지요"(구회장은 요즘도 앉은 자리에서 소주 한병은 거뜬히 마실
정도의 건강을 자랑한다.

작년 신입사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때는 밥을 두그릇이나 비웠을 정도다.

해외출장도 자주 다녀왔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경영혁신"을 주제로
한 외부출강도 잦다.

-50년 락희화학에 이사로 입사하신 이래 45년간 기업경영에만 전념해
오셨습니다.

회장자리를 물려주시는 감회는...

"돌이켜 보면 지난 69년12월 창업회장께서 갑자기 타계하시고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커다란 중책(그룹회장 취임)을 맡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그룹을 대과없이 이끌어옴으로써
현재 20개 CU에 10만여명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데 보람을
느낍니다.

이젠 좀 쉴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동안은 하루 시간표가 빈틈없이 꽉 짜여져서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지난 45년을 회고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1988년 11월 22일은 25년이 넘는 저의 최고경영자 생활을 통해서 가장
뜻깊은,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 그룹이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이의
실현을 위한 장기경영전략으로서 "21세기 경영구상"을 발표한 뜻깊은
날이었기 때문이지요.

이로써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경영혁신의 첫발을 내디디게 됐습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시면 어떤 일을 주로 하실 생각입니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임회장의 경영에 대한 지원과 조언자로서의
역할은 하되,직접적인 경영활동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LG복지재단과 LG연암학원에서 추진해오고 있는 사회복지사업과
문화사업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또 그동안 일이 바빠 설악산을 빼고는 국내여행도 제대로 못다녔는데
집사람과 한 2년동안 이곳저곳 여행을 다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구회장은 퇴임과 함께 현재 여의도 쌍둥이빌딩 동관30층에 있는
그룹회장실을 장남인 구본무부회장에게 물려주고,자신은 32층에 새로
마련하고있는 명예회장실에서 일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매일 출퇴근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앞으로 LG그룹은 무엇을 보강하고,어느 부문을 집중 강화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LG는 보수적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도 있거든요.

"보수적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3저호황기인 80년대말부터 급격한 경영변화를 예측하고 재계에 경영혁신을
선도해오지 않았습니까.

그간의 경영혁신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그룹은 전기.전자와 화학분야에서
축적해온 기술과 인재 경영노하우등을 바탕으로 정보 에너지 환경 생명공학등
새로운 사업기회를 선취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고희연때 "일흔에 꾸는 꿈"이라는 회장의 일대기를 그린 슬라이드
상영이 있었습니다.

요즘 회장께서는 무슨 꿈을 꾸십니까.

"제 꿈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우리 LG그룹이 21세기에 세계 초우량기업이
돼서,고객만족을 토대로 판매도 늘고 많은 이익을 올려서 주주에게 가장 높은
배당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정부에도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사원에게도 가장 윤택한 생활을 보장해 줄
수있는 회사가 돼야지요"

-구본무부회장을 경영인으로서,후계자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신임회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입니까.

"구부회장은 입사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을 차례로 거치면서
20여년간 다른 경영자들과 똑같이 경영수업을 받아왔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경영자로서 실무경험과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경영혁신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 시대를
선취해 가는 철저한 혁신으로 반드시 LG그룹을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회장께서 생각하시는 미래의 한국대기업상과 오너의 역할은 무엇인지요.

"현재 최상의 상품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제한된 업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회사전체 매출액의 80%이상이 단일업종이나 상호연관성을 갖고있는
소수 업종에서 나오고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특정분야에 경영자원을 집중해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해야지요"

-LG그룹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해주십시오.

"건실한 재무구조와 우수한 인재집단이 가장 자랑거립니다.

업종구성을 봐도 전기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비중이 높지요.

다만 새로이 늘어나는 미래형 사업에 참여해 미래 유망사업의 비중을
높이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봅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즐겨드시는 음식과 운동은 무엇인지요.

"지금까지는 회사일이 바빠서 가끔 골프하는 것 외에는 운동을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흙을 만지고 화초를 돌보며 자연과 가까이 하다보니 아직 건강에는
자신이 있지요.

무엇보다 항상 마음을 편안히 갖고자 노력하는 것이 제 건강유지의
비결이라고 할까요.

음식은 별로 가리는 편이 아닙니다만 한식,특히 된장찌개를 좋아합니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