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의 유통경로가 회사의 상품개발전략을 좌우한다"

요즘 식품업계에서 나돌고 있는 얘기다.

유통경로의 다양화로 제품마다 독특한 유통경로가 형성됨에 따라 식품
업체들이 제품을 개발할때 자사의 유통망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풀무원이 이달말 내놓기로한 "풀무원생라면"은 유통이 제품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

이회사는 냉장유통되는 "풀무원생라면"으로 라면시장에 진출한다.

풀무원두부와 콩나물등이 냉장유통방식으로 운송되고 있기 때문에 라면도
냉장유통시스템에 맞게 개발한 것.

풀무원은 당초 라면사업참여를 망설였었다.

농심과 삼양식품등 여러업체들이 과당경쟁양상을 보이고 있는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가는 살아남기조차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때문이었다.

풀무원은 고민끝에 "섭씨5도에서 5일동안만 유통"될수 있는 생라면을 생각
해 냈다.

냉장차와 냉장물류시스템등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콜드체인(Cold Chain)을
이용할 경우 신선한 제품공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회사는 결국 틈새시장(니치마켓)을 유통쪽에서 찾아낸 셈이다.

상온에서 일반차량으로 운송되는 라면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분야를 선택했다.

이와는 반대로 농심은 상온에서 유통가능한 "생생라면"을 지난해말부터
판매하고 있다.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물로 끓인후 멸균포장해 상온에서 5개월간 유통
가능한 제품을 개발했다.

상온유통시스템만을 갖추고 있어서다.

풀무원과 농심의 라면제품차이는 결국 유통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은 양상은 주스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냉장유통주스는 서울우유 매일유업등 유가공메이커들이 만들고 있으며
상온유통주스는 해태음료 롯데칠성음료등 일반음료업체들이 내놓고 있다.

유가공업체들은 우유 발효유등을 냉장유통방식으로 시중에 공급해 왔기
때문에 냉장유통주스를 선택했다.

음료업체들은 상온유통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어 상온유통주스를 생산하고
있다.

유통시스템이 서로 다르기때문에 제품조차 달라진 것이다.

제일제당이 최근 "도울후로레쉬"라는 오렌지주스를 냉장유통제품으로
내놓은 것도 냉장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가능했다.

이회사는 햄등 육가공제품을 냉장유통으로 판매하고 있어 냉장유통주스를
시중에 공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오뚜기식품등은 냉장유통제품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냉장유통시스템이
없어 참여를 못하고 있는 상황.

새로운 물류시스템을 갖추는데 많은 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제일제당 김성수음료기획팀장은 "냉장창고와 냉장차량 냉장유통설비등
냉장유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를 갖추려면 2백억원이상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할인점 편의점등 유통업체들이 다양화되는 것도 식품업체들의 제품전략변화
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유통업체별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내야 판매에 성공할수 있기 때문
이다.

프라이스클럽 E마트등 할인점들은 묶음단위 또는 박스형태로 제품을 판매
하고 있다.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할인점들은 제품포장디자인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어줄 것을 제조업체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구매단위가 소량인 편의점들은 디자인등에서 눈에 띄는 제품을 선호
한다.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가격보다는 제품모양과 품질을 더 따지기 때문
이다.

식품업체들이 최근 묶음단위로 제품포장을 바꾸거나 크기를 다양화하고
있는 것도 유통업계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업계는 유통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이같은 추세가 확산, 유통업체의 요구대로
제품을 만들어낼수밖에 없는 "유통우위시대"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