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속에 파묻혀 사는 은행원들.

그들 가운데 현금에 대한 반란을 꿈꾸는 은행원들이 있다.

지폐와 동전을 몰아내고 한 장의 신용카드로 대신하고자 하는 이들의
"불순한 모의"는 은행건물 한귀퉁이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신용카드사업담당
부서에서 꾸며진다.

주택은행 신용사업실 함영탁대리(35)가 바로 주모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3의화폐인 신용카드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들의 모의는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해 신용카드사용실적과 이 분야의 수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간
증가율이 50%에 육박하는등 이들의 생각이 점차 현실화되고 은행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함대리는 요즘 신용카드에 반도체 칩을 넣은 최첨단 다기능카드(IC카드)를
도입하는 방안을 짜내느라 골몰하고 있다.

기억용량이 많은 이 IC카드 한장에 여러 신용카드의 기능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공중전화 지하철 병원진료 레저등 어떤 용도에도 사용할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거 병력과 병원진료기록을 담아두면 사고가 났을 때 어느 병원에서도
즉시 조치할수 있다.

또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세무사항 운전면허등을 입력해 주민등록증으로도
사용하면서 전출입신고등 모든 일을 한장의 IC카드에 맡긴다는 생각이다.

이동통신이 발달하면 항공기나 택시에서도 쓸수있어 결국 세뱃돈 줄때
빼놓고는 동전한닢도 갖고다닐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함대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BC카드계열의 다른 은행들보다 한발 앞서
카드마케팅기법을 개발한뒤 이를 다른 은행들에 전수해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지난93년12월 단기체납자에게 컴퓨터를 통해 자동으로 전화하는 ACS
(애니콜링시스템)를 개발한 것이 그의 첫작품이다.

지난해 6월 은행에 직접 나오기 어려운 전문직업 중산층을 중심으로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카드설계사제도를 도입, 카드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

장기체납자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도록 나이든 퇴직직원을 위촉, 관리하는
카드관리사제도(94년8월), 고객들과의 통화성공률이 가장 높은 저녁시간에
집에서 컴퓨터와 전화로 마케팅을 하는 주부텔러제도(94년 12월)등이 모두
함대리의 아이디어로 은행권에서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

주택은행의 특성을 살려 올해부터 카드사용실적이 많으면 주택자금대출을
늘려 주기로 한것은 다른 은행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자랑한다.

똑같은 마케팅이라도 고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효율적이도록
여러측면에서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나타난다.

이에따라 지난해 주택은행 고객 1인당 연간카드이용대금이 1백98만원에
달해 다른 은행들을 훨씬 앞질렀다.

카드 한장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세상을 그리는 함대리의 카드사업기획은
지금도 쉴틈없이 계속되고 있다.

<김성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