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거래법시행령 개정안은 법안자체의
의미보다 법안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겠다는 "조사"가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주식분산이 잘된 그룹이나 기업은 공정거래법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주되 위장분산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겠다는 대목이다.

언듯 보기엔 단순히 공정거래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절차로 볼수도 있다.

하지만 기류가 미묘한 싯점에서 나온 조치여서 단순한 "절차" 이상의 무게
를 느끼게 하고 있다.

새로운 대기업정책의 포문을 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요즘들어 항간에는 개혁의 다음 과녁이 이른바 "재벌"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금융실명제와 정부조직개편, 부동산실명제에 이어 이번엔 대기업주들에게
메스를 댄다는 얘기들이다.

대기업 주식의 소유분산을 끌어내기 위해 현황파악과 접근방법에 대한
검증이 이미 마쳐졌으며 조만간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게 소문들의
줄거리다.

간간이 거론되고 있는 "주식실명제"도 이와중에 나온 말이다.

김영삼대통령도 연초에 대기업정책의 변화를 요구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재벌의 소유집중과 선단식경영문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노력해 해소하라"고 지시한 대목이다.

의례적인 "말씀"이라기엔 톤이 상당히 강했다는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공정위의 발표가 있은 뒤 재정경제원의 고위당국자도 이같은 기류변화를
확인했다.

그는 "대기업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
패밀리"가 대기업그룹을 지배하는 현상이 계속되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수 없을 뿐 아니라 경제력집중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게 정부내의
시각"이라며 "어떻한 형태로든 소유분산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대기업에 대해선 정부의 각종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소유분산
은 강도 높게 챙겨 나갈 것"이라고 대기업정책의 방향을 밝혔다.

이번에 소유분산이 잘됐거나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은 공정거래법의
저촉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주식을 위장분산
시켜 놓은 기업은 가려놓기로 한 것도 같은 매락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대기업의 신규사업 참여나 기술도입, 기존 시설의 신증설등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되 변칙증여나 사전상속 회사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등 과거의 악습은 더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정부의 변화노력에 부응해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이같은 분위기를 종합할 때 이번에 벌이는 조사는 단순한 확인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주의 주식이 누구앞으로 돼있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속이나
증여세 탈세여부도 함께 파악한다는게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금융실명제 실시이후에도 대기업주들의 주식실명전환은 극히
부진했던 만큼 실명제 위반에 대한 "위법"여부가 가려지고 이에따른 "처벌"
과 세금추징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나아가 소유분산으로 시작되는 대기업주 "공세"는 일반적인 기업행태
개선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예상할 수있다.

문제는 이같은 조치들이 "개혁"이라는 명분을 타고 진행됨으로써 또다른
오류를 범할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 부를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도 있고 활기를 띠고 있는 투자의욕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요컨데 부정공직자에 대한 종래의 사정작업과 같이 "마녀사냥" 식이
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정만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