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저 <한경 서평위원회 선정>

나는 과학을 알지못한다.

과학이 지니고 있는 인식의 내용들,그것을 담고 펴는 개념이나 논리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은 그러한 짐작을 내게 허락할 만큼 쉽지 않다.

그만큼 과학은 어렵고 힘들고 대단한 것이어서 과학의 울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만 아련한 동경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기만 하다.

그래서 과학은 우리의 일상속에 있는 것이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먼데..그런까닭일까.

과학의 선언은 늘 무조건적인 것으로 수용된다.

그러므로 내가 과학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현대의 내 삶을 제어하는 명제이고 서술이고 규범이라고
하는 사실 뿐이다.

과학이 삶의 규범이라고 하는 선언이나 과학이 낳는 편의가 나를
배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삶의 마디마디에서 스멀거리면서
나는 도대체 앎이란 무엇인가,삶이란 무엇인가,문명이란 무엇인가,그리고
마침내 신은 인간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수 없는 필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리에서 되살펴지는 과학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그것이
인간이 지니는 엄청난 앎의 다만 하나의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알고있는 과학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고
비과학적이었던가를 터득하면서 사람이 과학의 것이 되는게 아니라
과학이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와 만나는 자리에서
과학을 되다듬는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성숙한 인간의 발언을 듣는다.

그러한 경청은 감동스러운 경험이고,동시에 현대가 직면하는 닫혀진
상황을 열어주는 출구의 마련이며,그래서 가능성으로 가득찬 열려진
지평의 확보이기도 하다.

김용준교수의 "사람의 과학"이 내게 주는 새로운 "경험"을 나는 이렇게
서술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서평을 쓰는 일이지 독후감을 쓰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겨우 내가 그책을 읽은 경험만을 쓰고있을 뿐이다.

이것은 무척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어쩔수 없다.

나로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것은 바로 그 책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과학"은 그러한 책이다.

이책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과학이론의 역사성,과학과 철학의 대화,과학과 종교의 관계,환경의
문제, 우리정부의 과학정책,함석헌선생에 대한 회상,과학자로서의
자기생애에 대한 자전적회고,그리고 저자의 아우인 김용옥교수의
"맏형 이야기"까지. 그런데 어떤내용도 그것이 인식의 소리이기보다
고백의 육성이었다는 사실때문에 실은 나는 아무것도 얻은것이 없다.

다만 어느틈에 나는 나도모르게 저자의 자리에서 그와 똑같이 과학과
현대와 인간과 문명을 바라보고 있다고 엉뚱한 착각을 하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착각이 내겐 무척 다행스럽다.

<통나무간 4백34면 7천5백원>

정진홍 <서울대교수/종교학과>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5일자).